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범 Oct 09. 2024

메디아 루나 - 사카다 5

극장에 들어선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란 듯했다. 놀란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지만, 잠시 멈칫한 그 순간에 그녀가 당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극장 안에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다시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잠시만요, 자윤 교무님. 밖은 이제 제법 쌀쌀합니다. 그냥 들어와 계시죠. 불편하시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나가려는 그녀에게 차분히 말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없이 극장 구석에 있는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극장 안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 정적이 오랜만에 어색하게 느껴졌다. 견딜 수 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다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한 자리를 건너 그녀 옆에 앉았다. 여전히 경계의 눈빛이 느껴졌다.


"후회하진 않나요?"

내 입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 나조차도 당황했지만, 이번만큼은 그 감정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내 안에 불을 지피는 듯했다.


"가끔 생각해요.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우리가 진짜 사랑한 게 맞았을까."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니, 유치하네요. 그 이야기 저번에 다 끝낸 거 아니었나요?"

그녀의 차가운 말과 혐오가 담긴 눈빛이 내 마음을 철렁하게 했다.


"일방적으로 끝냈다고 했지, 내가 동의한 적은 없어요. 전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어떻게 끝낼 수 있죠? 그러니 말해줘요. 우리의 사랑은 거짓이었나요?"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존대를 유지하려 애썼다. 혹시라도 누가 올까 봐, 상황을 통제하려는 나름의 절제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대답해 줘요. 그 마음, 거짓이었나요?"


"하… 사랑, 사랑… 정말 지겹네요. 로맨티시스트 나셨네. 당신은 마치 자기가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아는 모양이죠? 정신 차리세요.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랑, 그 집착과 욕심이 결국 우리 관계를 망쳤어요. 그걸 굳이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부르죠.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내게 사랑이 아니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에 필요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그 사랑 타령은 이제 그만두고, 일에나 집중하세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화장실에 가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녀가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수호 신부가 극장으로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의 따뜻한 환대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급하게 눈가를 훔친 후, 대강 인사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젖은 머리와 얼굴은 마치 비에 젖은 것 같았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극장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극장 안에는 모두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메디아 루나 - 사카다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