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ada 8
"오늘은 사카다(sacada)란 동작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자주 쓰고 계신 동작일 텐데 처음 배우는 분들도 있으니, 하나씩 짚어봅시다."
사람들이 모이자 밀러가 수업을 시작했다. 여전히 에밀리아는 내 팔에 팔짱을 낀 채 밀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팔에서 그녀의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긴장이 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중에도 밀러의 설명은 계속됐다.
"사카다란 파트너의 움직임에 따라 상대의 다리 공간으로 스탭을 밀고 들어가는 리드 동작입니다. 히로를 하거나, 스텝을 밟을 때, 그 공간으로 무게를 이동시켜서 그 공간을 차지하는 거죠. 자 보세요."
말을 마친 밀러는 조이와 함께 사카다 동작을 시연했다. 조이가 오쵸로 회전할 때 밀러의 발이 조이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고, 조이의 발을 자연스럽게 밀어내며 회전 동작을 이끌어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아름답게 보였다. 동작에 시선을 빼앗겨 감탄을 하는데, 다시 팔에서 감촉이 느껴졌다. 에밀리아가 선생님들의 동작에 감탄하며 흥분된 듯 상체를 더 가까이 밀착시켜 왔다. 나는 다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움직임을 만드시면 됩니다. 중요한 건 무게 중심을 옮겨서 상대의 자리를 점령한다는 느낌을 가져가셔야 한다는 겁니다. 상대의 무게 중심이 있던 자리를 점령하는 게 사카다의 핵심입니다. 사카다란 동작자체가 사카르(sacar)란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밀어내다, 빼앗다'란 의미가 있어요. 말 그대로 상대의 무게가 있던 영역을 빼앗아 상대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줘야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꼭 상대의 다리를 쳐내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리드가 정확히 들어갑니다."
밀러가 다시 한번 조이의 공간을 점령하며 이야기했다. 그런 밀러를 보고 있다 조이가 이어서 말했다.
"밀어내는 거라고 해서 힘으로 상대를 밀치면 안 돼요. 상대를 아프게 하면 의미가 없겠죠.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움직인다는 의도를 전해주고, 상대의 공간을 함께 공유한다고 생각하세요. 빼앗기만 해서는 춤이 완성되지 않아요. 상대의 영역에 들어가 축을 공유하는 것이지 상대의 축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에요. 상대를 무너뜨리면 그 순간 그 춤은 끝납니다."
조이가 밀러를 힐끗 째려보며 이야기했다. 밀러도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런 밀러를 보며 조이가 피식 웃음 짓고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옆 사람과 한 번 잡아볼게요. 잡은 상태에서 하는 걸 보고 따라 하세요."
조이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상대를 찾아 아브라소를 했다. 에밀리아도 그제야 팔짱을 풀고 손을 내밀었다. 그녀와 아브라소를 하기 전에 살짝 긴장을 풀기 위해 어깨를 몇 번 털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아브라소를 하는데, 건너편에 있던 엘레이나와 루크도 아브라소를 하는 게 보였다. 자꾸만 웃는 듯한 엘레이나의 모습에 다시금 신경이 쓰였다.
약간 멍하니 멈춰있는데, 에밀리아가 왼손을 잡고 아브라소를 바르게 만들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자연스레 내 등뒤로 다가와 나를 끌어당겼다. 그녀와 평소보다 조금 더 밀착된 상태로 아브라소가 형성됐다. 살짝 당황하는데 그녀가 싱긋 웃었다.
"연습해야죠! 자, 집중하세요 데이빗 님."
에밀리아가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네, 집중해야죠."
애써 에밀리아의 눈을 피하며 선생님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밀리아도 나를 따라 그들의 동작을 보고 따라 했다.
사카다를 시도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리 사이로 다리를 넣어 무게를 이동시키는 것도 어려웠고, 무게가 없는 남은 다리를 살며시 밀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까닥하면 발을 밟을 거 같아 걱정이 됐고, 발을 세게 차게 될까 염려됐다. 타이밍도 잡기가 어려워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낑낑되며 수업을 듣는데, 에밀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잘 안되죠? 연습 안 해본 동작인가 봐요?"
"아, 네, 뭐. 처음 배우는 동작이긴 합니다. 어설프죠? 죄송스럽네요."
"아니요, 죄송하라고 하는 말을 아니고, 뉴스타 대회에 나간다고 하더니, 연습을 잘 안 하나 걱정돼서 물어봤어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게 적으니까 연습할 수 있는 범위도 적어서 못했던 것뿐이에요. 연습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고요. 대회 나가려면 연습 열심히 해야 돼요! 아셨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답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던 차에 문득 궁금증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 의문을 풀고자 끝나가는 대화의 끝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에밀리아 님은 대회에 안 나가세요?"
"저요? 뉴스타를 말씀하시는 거면, 올해가 마지막으로 나갈 수 있는 해인데. 파트너가 없네요, 아쉽게도."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무언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 그래요? 잘하시는 분들 많던데, 그분 들하고 나가 보시지 않고 왜...?"
"다들 생각보다 연차들이 많아요. 뉴스타는 탱고를 배운 지 딱 3년 이내에만 가능한 대회라 비슷한 연차를 찾는 게 쉽지 않네요. 물론, 연차만 비슷하면 안 되고 탱고도 잘하거나, 잘할 사람이어야 하니까 더 그러겠죠?"
그녀가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묘한 표정에서 어떤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거, 아쉽네요. 꼭 좋은 분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함께 같은 무대에 서길 바라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자리를 옮겼다. 때마침 연습 상대를 바꿔 이동하라는 밀러의 안내가 있었다. 그 안내에 따라 자리를 옮기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도 웃는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수업이 계속되는 내내 동작에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동작보다 신경 쓰이는 게 생겨버렸기 때문에, 신경이 나도 모르게 곤두섰다. 상대방에 집중하지 못한 채 어설픈 동작이 이어졌다. 나도 모르게 이미 어딘가에 점령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어찌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온통 신경은 한 곳을 향해 있었다. 그때 또다시 연습 상대를 바꾸라는 밀러의 안내가 있었다. 자리를 옮기니 엘레이나가 있었다. 그녀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표정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그럼에도 먼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아브라소를 했다. 그녀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쩐지 죄를 지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브라소가 가까워졌을 때, 저번과 달리 먼저 사과했다.
"미안해요, 제가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기분 풀어요."
그녀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다. 엘레이나도 내 사과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곤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서로의 기분을 어루만진 것과는 별개로 춤은 전혀 나아진 모습이 없었다. 여전히 그녀는 뻣뻣했다. 에밀리아 자연스레 비교가 됐다. 표정이 좋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수업시간에 임했다. 그녀의 발 사이로 발이 들어갈 때마다 좁게 열린 그녀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엘레이나의 공간을 침범하지도, 그녀와 공간을 나누지도 못하고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그녀는 가뿐 숨을 내쉬었지만, 어딘가 탐탁지 않은 듯한 느낌에 기분이 묘했다. 수업이 마무리되었고, 엘레이나는 잠시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때 살며시 에밀리아가 다가왔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수업 시간에 싸웠어요?"
에밀리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싸운 건 아니고 수업이 어려워서요. 생각보다 더 쉽지 않네요, 탱고."
"탱고의 별명이 뭔지 아세요? 바로, 춤의 무덤이에요. 처음부터 끝판왕으로 찾아오셨네요. 환영해요 무덤에 온 걸."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친절이 어딘가 반가우면서도,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한참 혼자서 웃더니 내게 말했다.
"혹시 저번에 갔던 밀롱가 어땠어요?"
"밀롱가요? 아 루크가 불러서 갔던 그곳이요? 제게는 좀 무섭고 힘든 곳이었죠."
"그건 자주 가보지 않아서 그래요. 저랑 좀 다니면서 탱고에 익숙해지는 게 어때요?"
그녀가 팔꿈치로 장나스레 팔을 툭툭 밀며 말했다. 그녀의 뜻밖의 제안에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