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가 남긴 교훈
등산을 할 때 가끔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한결 편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엔 가족과 함께 하는 등산에서 부모님께서 주로 그런 역할을 담당해주셨어요. 조금 더 올라가기가 싫어 땅바닥에 주저앉아 숨만 고르고 있는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고 앞에서 이끌어주시기도 했어요. 어떤 때는 등산을 마무리하고 어묵꼬치를 사주시겠다며 저를 회유하기도 하셨어요. 그러면 어린 저는 금방 신이 나서 다시 힘을 내곤 했습니다. 단순해서 행복했던 나날입니다.
직업이 승무원인 제가 좋아하는 단어는 '순항'입니다. 사실 기내에서 하는 바쁜 서비스는 비행기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순항이라는 단어와는 결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순항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무런 문제점이 없이 잘 가고 있다는 느낌에 저는 이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순항'이라는 말을 못 들어 본 지가 한 달 여가 지났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많은 항공사는 비행 운행을 멈추었습니다. 한 달여간 집에서만 지내고 바깥바람을 쐰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일을 할 수 있던 때에는 내 삶은 큰 노력 없이도 잘 흘러가는 강물처럼 너무나 쉬운 인생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 지구 반대편에서 보는 아름다운 노을과 석양을 감흥 없이 보고 기뻐하지도 않았으며, 감사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이 도시에 발을 들이게 도와준 것들(예를 들어 내게 승무원이라는 꿈을 갖게 해 준 사람들, 지원해주신 부모님, 하필이면 나를 선택해준 회사, 이번 비행이 순항할 수 있게 해 준 자연, 나를 이 도시로 보낸 회사 스케쥴링 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일상은 오늘 아니면 내일도 볼 수 있고, 이번이 아니면 다음번에 다시 올 수 있었으니까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내 삶은 원래 아름다웠고, 아름답고, 아름다울 것이다.' 하는 감정에 취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안일한 태도로 인생을 여행했던 저는 지금, 새벽 3시에 집 안에 틀어박혀 한 달째 그때 좀 더 세심한 감수성으로 많은 아름다움 혹은 감사함을 느낄 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던 그날... 우리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안에서 잠시 쉬도록 배려해준 가게 주인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전했었나?'. '그날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사진 찍기에만 관심이 몰린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었나?', '그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먼저 말할 걸...' 하는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요.
세상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어제를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고 보냈는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엔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저를 도와주셨고요. 비행을 할 때에는 하늘길이라는 대자연이 저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제가 일을 하면서 기분이 좋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적인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쉬는 짬에 잠깐 창문을 통해 내려본 지상의 풍경(구름과 겹쳐져 있어서 더 아름다워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하필이면 비도 내리지 않고 완벽한 날씨를 선물해준 자연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많은 복합적이지만 거창하지 않은 아주 소소한 이유 덕분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활기찬 도시를 보며 저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어디에선가 받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지금 이 건조한 사막 나라에서 견디고 있는 상황도 저에게는 사실 필요했던 휴식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빨간 신호등 다음엔 초록 신호등이 불을 켜듯 지금은 잠시 멈춰서 숨을 가다듬고 다시 초록 신호등이 오길 기다립니다. 앞길만 보고 종종걸음으로 갔던 제가 횡단보도 앞에 그제야 멈춰서 이 공간의 느낌을 온전하게 느껴봅니다.
다시 동료들을 만나면 꼭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여행지에 가서 나를 보며 웃어주는 가게 주인에게 저도 다정한 미소를 보내야겠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따뜻하게 제게 품을 내주시는 엄마 아빠께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