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었고, 고독한 내 영혼은 치유받았습니다.
취업생들이라면 꼭 한 번쯤은 갈까 고민하게 되는 면접 학원. 그곳에 가면 배우게 되는 것 들 몇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이미지 메이킹입니다. 면접관 앞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도록 치아는 몇 개를 내놓고 웃으라는 둥 많은 기술과 노하우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웃는 법에는 기술이 있다고 배웁니다.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전해 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결론은 '윗니 8개' 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면접 학원에 가면 그렇게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연습을 하는 취업 준비생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웃는 법에 기술이 있다면, 우는 법에도 기술이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야 할 만큼 슬픈 날, 너무나도 고독할 때는 도대체 어떻게 울어야 합니까?
최근 나는 펑펑 운 적이 있습니다. 여자에게는 한 달에 한번 온다는 그 호르몬의 마법 때문인지, 기나긴 격리생활로 일어난 내 정신의 나약함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내게 밉게 대했던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의 조각 때문인지... 무언가 하나로 집어서 말하기에는 그 이유 한 가지로는 비약이 되겠다 싶을 정도로 문제는 '복합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실 마음을 한층 벗겨서 보면 울고 싶은 가닥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일이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말로 표현도 할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다던가,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밝히고 마음을 위로받기에는 그 문제가 비도덕, 비윤리적이라던가, 마음에 파인 흉터처럼 남아 이제는 어떤 식으로 위로를 받아도 더 이상 차도가 없을 상태라던가 하는 등의 이유로 내 마음 바깥으로는 한 번도 꺼내지 못할 그런 문제 말입니다. 내 영혼 안에서 분리수거되지 않고 한 군데에 쌓여 역한 쓰레기 냄새를 풍기고 있다가, 나중에는 이 부정적인 기억의 조각들이 모두 엉켜진 상태로 썩어버려 어디로 분리수거를 해 보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그곳에는 어쩌면 '우울'이라는 이름의 파리가 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리가 꼬일 때로 꼬여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었던 저는 어제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갑자기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울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울지 않음'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뭉개지고 짓눌려 썩은 음식 쓰레기처럼 느껴졌던 마음에 더 이상 파리가 꼬이게 놔두기 싫었습니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처럼 흩어져 있었던 나의 의식들을 한 군데에 모아 마음에만 집중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가슴팍에 무언가 큰 돌로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목에는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이내 콧잔등이 시큰둥해졌고,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호흡이 가빠지고 다시 느려지고 다시 가빠지고를 반복했습니다. 괴물처럼 소리 내어 울기도 했고, 코를 훌쩍이며 비교적 보기 좋게 울기도 했습니다. 먹구름이 가득했던 제 마음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모든 것들은 처음에는 흑백사진처럼 떠오르더니 이제는 색깔이 입혀져 칼라사진으로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내 정신이 또렷하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는 동안 마음에는 큰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들풀처럼 하찮았던 내 감정이 어느 순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몰라서 지나쳤겠지만, 스스로는 알면서도 애써 회피했던 내 마음이 드디어 위안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에게 안정을 준 사람은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 의식을 마음에만 집중을 하기 시작하니 스스로를 짓눌렸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씩 분리수거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슬픈지도 모를 만큼 어지러웠던 내 마음은 외로움, 고독함, 억울함, 미움 같은 통에 하나씩 분류되었습니다. 그렇게 내려놓고 나서는 정신과 영혼이 일체가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신이 진하게 듦과 동시에 온 몸의 긴장이 풀리는 그런 기분... 뜨거운 국을 마시고 나서 더욱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울고 나니 내 마음은 더욱 개운해졌습니다.
고독한 내 마음에 무엇인가가 '연결'된다는 느낌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 연결점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상관없이 영혼을 안정시키기에는 충분했을 텐데, 나는 그것도 모른 체 타인에게서 그 연결점을 찾으려 욕심을 부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통이 안 되는 부부가 이혼으로 끝이 나듯 내 안의 영혼과 정신이 소통되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외로움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몇 번 더 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울고 싶을 때엔 굳이 울음을 참지 말고 시원하게 울겠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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