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엠보싱, 자세히 보면 보여요
2020년의 일이다. '한글 점자를 활용한 상품을 만들고 싶은데 어디에 적용할 수 있을까.' 지인과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두루마리 휴지가 등장했다. 어차피 엠보싱인데 그 엠보싱을 점자로 하면? 구웃!!!
2021년, 한글 점자를 활용한 문화상품 개발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하며, 2020년에 언급했던 두루마리 휴지는 첫번째 품목이나 다름없었다. 예산이 부족하니 점자 큐브처럼 기성품을 활용하기로 했는데, 두루마리 휴지 작업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자꾸만 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냥 휴지회사에 제안 해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해보기도 전, 포기하는 것은 어쩐지 아까웠다. 샘플 촬영을 일주일 정도 앞 둔 어느날, '어디 한 번 해보자!'
점자를 찍겠다는 일념하에 무지 두루마리 휴지를 찾았는데 물결무늬나 목화 무늬가 판을 치는 두루마리 휴지 세상에서 밋밋함을 무기로 삼은 모습이 마음에 쏙 들었다. 대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대쪽같은 기품에 반해버린 난 조금 얇은감이 없지 않았지만 색감도 안성맞춤이라며 콧노래마저 나올 판이었다.
두루마리 화장지의 경우, 절취선이 있는 한 칸 단위로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데 작은 사각형 안에 반복해도 좋을 한글점자를 결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1. 시구를 넣을 수 있고
2. 캔디 봉투에 인쇄되어있듯이 응원의 메세지도 좋겠고
3. 사용처에 따른 재밌는 표현도 좋겠다.
호기롭게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점자를 찍어봤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길게 풀어놓은 휴지를 점판에 놓고 손으로 찍는것이 어렵기도 했고 둘둘둘 다시 감았더니 모양새가 좋지 못했다. 도록 작업을 위한 촬영도 해야하고 전시회도 해야하는데 수작업의 점자 두루마리 휴지라니......
휴지는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시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같은 브랜드의 여행용 티슈를 샘플로 사용하기로 했다. 두께가 얇아 작업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종이 한장을 덧대어 점자로 찍으니 느낌 정도는 낼 만 했다. 머릿속에서는 첫번째 상품이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뤄져 거의 막바지에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많이 바쁜 시기라 여러장의 티슈에 찍을 여력이 없었다. 달랑 3장의 휴지에 점자를 찍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한장을 티슈 비닐 케이스에 살짝 밀어 넣었다.
아기다루듯 조심하며 도록 작업을 위한 촬용을 마쳤다. 전시회 날짜까지는 남은 날이 있기에 넉넉한 상자에 모셔두다가 드디어 전시회 셋팅하는 날. 전시회 셋팅을 돕던 지인들에게 다른 샘플은 몰라도 이 티슈의 속사정을 말해두어야 했다. 점자가 있는 건 보이는 거 딱 한 장 뿐이니 절대로 잡아 빼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전시회 세팅이 채 끝나기 전에 기록집 작업에 도움을 주셨던 점자 출판사에서 관람하러 오셨다. 첫번 째 단체 관람객. 아직 전시회 오픈 전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그분들의 관심을 즐겼다. 남기고 간 여운을 한껏 즐기며 셋팅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티슈에 점자가 없다. 관람객에게 주의사항을 알리지 않은 나의 불찰로 벌어진 일이니 혼자만 슬퍼할 수 밖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전시회에선 점자가 있는 티슈를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도록에는 있지만 전시를 할 수 없었던 점자가 있는 티슈는 다음 기회에.
#점자
#한글점자를활용한문화상품
#점점더상품의저작권은한미서점에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