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아이도 집을 나서기 전, 걸려온 전화에 '내동생'이 떴다.
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에게 이른 아침 전화가 걸려오면 겁부터 나 놀람이 담긴 억양으로 '왜!'냐고 묻게 되는데, '엄마가 커피 드시다가 넘어지신 것 같다!'며 짜증이 잔뜩 실린 말이 휴대전화 가득했다.
치매가 있으신 엄마는 평일 오전 9시 반이면 구에서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에 가셨다가 오후 5시에 집에 오신다. 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은 그때가 자유시간으로 그 시간을 활용하여 강의를 하기도 하고, 짧은 여행을 즐기기도 하는 등 개인의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 그런데, 엄마가 넘어지셨으니.
계획해 놓은 일정이 틀어지면서 짜증이 확! 밀려왔을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걱정이 앞서야 했기에 그 마음을 알면서도 '짜증 좀 내지 말라'는 말에 더해 기어이 애가 넘어졌어도 짜증을 냈겠냐 물었다. 내 말이 도움이 안 됐는지 '엄만 애가 아니지 않으냐'면서 단호했다. 따로 사는 나는 입을 닫을 수밖에.
동생의 말대로 엄마는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맞다고도 할 수 없다. 치매에 걸린 노인,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이 주체가 되어 많은 것을 할 수 없는 사람,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어른으로 안타깝지만 예전의 엄마가 아니다. 인정해야 했다. 인정해야 한다. 그게 팩트니까.
하지만 인정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또 달라 '저걸 왜 못하실까, 왜 저렇게 하실까' 엄마의 행동에 때때로 머릿속이 분주해지기도 한다.
지금은 중학생인 아이가 아기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했다. 이제는 컸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는데, 때문에 내가 요구하는 것도 점점 늘어났다. 가령, 개인 텀블러는 하교 후 직접 닦기, 책상 위는 스스로 정리하기 등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기 때문일까, 엄마를 이해하는 크기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을 때 고양이가 보였다. 입양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얘한테 바라는 건 오직 하나, 건강뿐이라는 것.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제자리에 놓지 않아도, 비닐을 뜯어놔 자리가 지저분해져도, 똥꼬에 똥이 묻어있어도, 심지어 토를 해도 짜증 난다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화를 낸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상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고, 달라져야 한다. 그러니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건 병원도 마찬가지다.
넘어지셔서 꼼짝 못 하시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엘 갔다.(지금 생각하니 바로 119에 전화를 했어야 했나 싶다.) X-RAY촬영을 하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시는 엄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결과를 보는데 다행히 골절은 아니라며, 아무래도 힘줄이 끊어진 것 같다고 했다. '뼈에는 이상이 없냐'는 확인 질문에, '다행히 뼈에는 이상 없다'며 팔걸이에 팔을 고정하고 있을 것과 일주일치의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왔다. 집에서 일주일 지켜보다가 수술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는데, 일반적으로 팔이 올라가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치매가 있으신 분이라 수술하면 골치 아프다고.
'골치 아프다'는 표현을 선택한 의사가 달갑지 않았지만, 수술이나 입원은 가족 입장에서도 큰 불편함이 따르니 일주일 안에 나아지시기만을 바랐다.
매일 친정집으로 출근을 하며 동생과 번갈아 엄마를 돌봤다. 3일쯤 지나자 당신도 답답하셨는지 다친 팔의 손을 움직이셨고 약간의 움직임도 보여 희망적이었다. 치매환자이기 때문일까? 일주일 후 방문한 병원에서는 다시 일주일의 시간을 주며 매일 물리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바쁜 날에도 치료를 빠뜨리면 혹여나 완치되는 데 문제가 될까 두려워 열심히 모시고 다녔다.
다시 일주일 후.
좀 어떠시냐는 의사의 물음에 '물리치료사가 팔을 잡고 올리면 귀에 닿을 정도까지 됐다'라고 과정 및 결과를 보고하듯 대답했지만, 당신 혼자 올릴 힘이 되어야 한다며 MRI촬영을 제안했다. 오후 내내 진료 보고, 촬영하고, 이어 결과를 보는데 의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