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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Apr 12. 2023

엄마의 입원

골치아픈 환자가 되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던 의사는 2주가 지나서야 골절이 있다며 바로 입원을 요구했다.

움직이면 안된단다.


이건 무슨소린가. 지난 일주일동안 아프다는 팔을 꾸역꾸역 올리고 움직였던 엄마의 물리치료 시간이 스쳐지났다.

"그러면, 물리치료 하시면 안되는 거였네요?"


그렇단다. X-RAY에서는 몰랐는데 MRI상에서 보니 부러졌다며, 본인이 잘못봤음을, 잘못했음을 시인했다. 멱살을 잡혀도 할 말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자고로 의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인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담당 선생님이 어쩐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잘못은 둘째치고 '그렇게 얘기해줘 고맙다'고 했다.


그나저나 문제는 입원이다. 매일 촬영하며 지켜봐야하기에 통원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사의 목표는 바로 비수술.


치매까지 앓고 계신 예민하고 까다로운 엄마가, 낯선사람들과 낯선 공간에서 생활을 하셔야 한다니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입원을 위한 각종 검사를 안내하는 간호사는, 엄마의 치매를 거론하며 입원여부를 선택하라고 했다. '선택'이라니,  '선택' 이라고?, '선택' 해도 되는 거였던가?


의사는 분명 통원치료는 안된다고 했는데, 입원여부를 선택하라니. '선택'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간호사가 여간 야속한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조차 치매를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골치아픈 것일 뿐.)


'선택의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난처한 표정을 띈 채 치매환자는 1:1 간병인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예상했기에 동생과 내가 번갈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24시간, 입원기간 내내 가능한 한사람이어야 한다는 실행하기 어려운 대답을 해왔다. 교대하면 안된다니 별수없이 간병인을 수소문했고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병원문을 나섰다.
첫인상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았던 간병인에게 엄마를 맡기고 말이다.


아이만 덩그러니 남기고 온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았지만 이 또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동생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데 입원한 병동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당신 몸에 손도 못대게 한다며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로, 다른 병실에서까지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는 간호사의 언짢은 말투가 많이 거슬렸지만, 낯선 사람과 낯선 환경 때문이라는 말로 달랠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너무나 낯선 상황들을 엄마에게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한 후 불안한 마음을 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병원의 간호사는 적어도 치매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 아니었던가? 치매 인구는 날로 증가하는데 치매라서 안되는일이 많으니 인식개선 및 이해해 대한 교육이 필요해보였다. 어찌되었든 병원은 모든 환자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니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편치 않았지만 '괜찮아질거야'를 되뇌이며 잠자리에 들었다. 2시간이나 잤을까? 혹시라도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못받을까봐 불안했고, 엄마가 잘 계시는지 불안했다. 결국, 잠을 지속하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못살겠구나.....'


동생또한 잠을 못잤다고 했다. 하다못해 엄마가 문단속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챙겨야 할 것들만 많아 편하게 잘 줄 알았는데, 엄마가 계신 집과 엄마가 계시지 않은 집의 공기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고 쓸쓸하다고 했다.  


엄마의 안부가 궁금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전화하기가 두려워 오후 4시가 다 되었을 무렵에야 비로소 병동 간호사와 통화를 했다. 지난 밤 나와의 전화통화 후 조금은 안정을 취하셨고, 잠을 주무셨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신몸에 손 대는 걸 싫어하신다며 여전히 언짢은 말투였다.   


치매는 질병이다. 치매환자를 그저 골치아픈 사람으로 취급하는 환경은 바뀌어야 마땅한데, 병원에서조차 이해가 없으니 여간 씁쓸한 게 아니었다. 하긴 내 엄마가 치매에 걸리지 않으셨다면 나 또한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다음날 아침, 입원 3일 째 되는 날. 동생의 다급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렸다.

"언니! 간병인 아주머니가 전화하셨는데 기저귀 사다달래!"


짜증좀 내지 말라고 했더니 '간병인 아주머니가 신경질적으로 말씀하셔서 그랬다'고 금세 꼬리를 내린다. 아무래도 신경이 곤두 서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기에 일이 있어 부탁을 하는 동생에게 알았다는 말로 안심시켰다.


'대소변을 가리셔서 기저귀가 필요없다고 했는데 왜 필요할까......' 속상했지만 내가 간병을 할 수없는 상황에서 가타부타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양손 가득 기저귀를 든 채 병실로 들어섰다.

 

요청한 기저귀를 사왔느냐며 물으시더니 봉투를 개봉하고 익숙한 솜씨로 척척척, 기저귀를 겹치는 간병인의 모습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어 지난 날 엄마의 행동을 따다다다 읊어대신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신지 시끄럽기가 하늘을 찔렀다. 한참을 참고 듣다가 "좀 작게 말씀해주세요."

나의 부탁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당신 말씀만 따다다다.


주무시겠다는 엄마를 뒤로 한 채 간호사실로 향했다. 간병인 대신 보호자인 내가 있으면 이후의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을 하고, 엄마의 지금 상태가 알고싶어 담당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어깨가 많이 부러진거였다는 말은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부러진 어깨 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이 아팠다.


또다시 다음날 아침.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간병인이 엄마를 휠체어에 앉히다가 엄마가 주저앉으셔서 X-RAY 촬영을 할 거라고. 신경정신과 약을 드시게 해도 되겠나고.

목이 메었다. 아무래도 내가 엄마 옆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1인실과 2인실 병실을 알아봤다. 원무과에서는 지금 병실의 환자들 그 누구도 컴플레인이 없는데 왜 병실을 바꾸려 하냐며, 1인실은 코로나로 인한 혹시 모를 긴급상황에 대비해 비워둬야 하고, 2인실 보다는 차라리 5인실이 나을거라며 조언 했다. 어쨌든 내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간병인에게 상황을 전했다.


급한 일들을 정리하고 하교한 아이와 이른 저녁을 먹으며 나의 결정을 알렸다. 그리고 남편이 해야 할 일, 동생이 해야 할 일을 넘긴 후 병원으로 갔다.


그렇게 난 엄마의 보호자이자 간병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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