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연 Apr 16. 2023

병원생활의 시작

엄마의 간병인이 되었다

엄마의 간병인이 되기로 한 첫날.

"내가 뭘 잘못해서 4일 만에 그만둬야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간병인께는, 엄마가 안정을 취하시는 게 우선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제가 하는 게 낫겠다고 말씀드린 후 교대를 했다.


아직은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금지되어 있기에 간병인은 처음에 들었다시피 1인이 지속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된 간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병동의 간호사들도 보호자인 내가 간병을 하는 것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필요한 절차를 마친 뒤 모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내 엄마가 계시는 병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간병인분이 이미 말씀을 하고 가셨을 터, 설명은 필요해 보이지 않았지만 낯설지 않을 정도로 도장을 찍을 필요는 있었다.    


"오늘부터 제가 있을 거예요."


"으응~ 잘했네, 잘했어." 간병인의 설명에 따르면 엄마의 소동이 꽤나 컸다고 했는데 그 누구도 불평이 없으셨다.

"엄마! 오늘부터 내가 엄마 옆에 있을 거야. 우리 빨리 낫고 집에 가자!"

엄마의 환해진 표정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시간은 이미 저녁 8시. 4박 5일 치의 짐은 생각보다 많아 좁은 공간에 요리조리 구겨 넣으며 재빨리 짐 정리를 하려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으시다며 엉덩이가 끈끈하다고 말씀하시는 엄마. 앗! 아니나 다를까 이미 흠뻑 젖은 기저귀.


속상한 마음을 한숨과 날려 보내며 엄마를 모시고 화장실에 가려는데, 침대에 걸터앉으신 엄마의 다리가 움직이질 앉았다. 오른쪽 어깨 골절이라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지만, 엄마를 일으켜 세우는데 까지는 성공! 이후는 함께지만 당신이 걸어야 했다. 하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단히 잘못했구나' 결국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저귀를 빼고 볼일을 보시게 한 후 엄마의 야윈 몸을 닦아 드렸다. 지난 3박 4일을 어떻게 보내셨을지 짐작이 됐다.


다시 휠체어를 이용해 3미터나 될까 싶은 엄마의 침대로 가 기저귀로부터 해방된, 그래서 조금은 편안해진 엄마를 뉘인 후 등받이를 세우고 마주 앉았다. 내가 옆에 있으니 화장실 가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하시라고,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낮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잘 부탁한다는 말씀까지 더했다.


만 3일 만에 걷지를 못하다시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참으려 애써도 어느새 눈물은 고여 시야가 흐려졌다. '내일부터는 무조건 걷게 해 드려야지.'


느린 걸음이라도 혼자서 화장실을 이용하셨던 분이다.

손잡고 엄마의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서서 20여 미터를 걸어 치매안심센터에서 오는 차량을 이용하셨다.

힘들어하시긴 했지만 화창한 날에는 부러 걸어서 한의원을 이용하시게도 했다. 사찰은 어떠한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적어도 100미터는 걸어야 했는데 오르막이 있는 그 길을 걸으셨다.

느리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은 맴맴 돌아 결국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병실에서의 첫날밤은 편치 않았다. 아니, 많이 불편했다. 잠자리를 많이 가리는 내가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을 사용 했고, 2시간마다 엄마를 모시고 화장실을 갔으며, 조금이라도 엄마의 인기척이 들리면 바로바로 반응해 엄마의 손을 잡아드렸다.


"엄마 나야. 시연이. 나 여기 있어."

혹시나 다른 분들이 깰까 봐 아주 조심스러운 몸짓과 목소리로.


하지만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그리고 아주 천천히라도 걸어서 화장실을 이용하신 것이 좋았다. 이렇게 걸을 수 있는 분을 걷지 않게 하고 무조건 기저귀에 소변을 보시게 하다니...... 내가 엄마라면 많이 수치스럽고 싫었을 것이다. 물론 이유는 짐작한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속상함, 화남, 복잡한 마음에 쉬이 잠은 오지 않았고, 2시간 정도의 잠에 만족을 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


기저귀에서 해방된 엄마의 화장실행은 다른 환자분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으응~ 잘했어.", "어머.. 잘 걸으시네~" 밤사이 걸으셨던 덕분일까 아침의 걸음은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입맛이 없을 이른 아침의 아침식사였지만 식사도 곧잘 하셨다. 간병인이 드릴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안 드셨다는 얘기, 간병인이 하도 큰소리를 내서 정신이 없었다는 얘기, 만지지 말라는데 기저귀를 자꾸만 만져서 엄마가 몹시 싫어하셨다는 얘기, 그래서 엄마가 발길질을 하셨다는 얘기, 간호사가 참다못해 간병인께 한마디 했다는 얘기, 그렇게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머뭇거리시더니 "에이 그만하자, 딸 속상하다." 못다한 말씀이 있어보였다.


답답함으로 여러 번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고, 그나마 지금이라도 간병인을 그만두게 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며 커피 한잔으로 마음을 달랬다.


오전 8시 30분, 기다렸던 회진시간.

수술 없이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반가운 이야기에 일주일을 예상했던 입원기간을 언급하며 다음 주 월요일에는 퇴원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벌려놓은 일로 화요일 오후엔 줌으로 회의가 있었기에 그전에 퇴원하길 바랐고, 하루종일 켜있는 TV소리로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 촬영하면서 봐야겠지만 현재로선 빠르면 월요일, 늦어도 수요일에는 퇴원하게 될 거"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수요일에 심장 초음파 외래가 예약되어 있었지만 월요일이나 화요일로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 마음대로 일정을 정리하고는 "엄마! 우리 월요일에 퇴원하자!" 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나의 계획과 희망은 잠시, 어깨 골절이 문제가 아니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의 하루는 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