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골절이 문제가 아니'라는 의사의 말은 다음 말이 듣고 싶지 않을 만큼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전신 스캐닝 후 발견된 것이 있었으니 늑골 4대가 부러졌다는 것.
문제는, 피나 물이 고여있으면 더 이상 이곳에서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본인이 보기엔 피나 물이 고여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럴 경우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일단 정밀사진을 찍은 후 다시 이야기하자며 만일의 경우도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심장이 쿵. 들이마신 숨이 내뱉어지지 않았다.
"많이... 아프셨을까요?"
"네."
"엄............청. 아프셨을 거예요.정밀사진을 찍고 다시 봅시다. 우선은 보호대를 착용하시게 될 거예요."
단호한 '네'와, '엄청'을 강조한 담당선생님은 "어머님께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서야 돌아섰다.
순간,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것이 심장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는 듯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염없이 눈물이 나와 엄마를 바라볼 수 없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들썩이는 어깨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대로 얼음이 되어 합장하고는 '제발 피나 물이 고여있지 않기를,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엄마를 치료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엄마...... 많이 아팠지? 미안해... " 파맛기가 다 풀린 엄마의 흰머리를 쓸어 넘기며 엄마의 뺨에 입맞춤을 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울었던 것 같다. 화장실에서, 휴게실에서, 엄마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엄청 아프셨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자꾸만 무한반복되어 맴맴 돌았다.
엄마와 커피 한 잔, 팔 보호대도 모자라 가슴에 하나 더 해야 한단다.
다음날 아침, 회진시간.
다행히 늑골에 피나 물이 고여있지 않다는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러진 뼈가 다른 장기를 찌르면 안 되니 병원에 더 계시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단다. 부러진 뼈가 다른 장기를 찌를 수 있는 상황이 무섭게 느껴지면서 엄마의 퇴원일이 점점 멀어지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내게는 지옥 같은 병원생활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엄마를 돌보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병원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한다.
5인실 병실의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탁탁탁 조심성이라고는 1도 없는 스위치 소리가 병실을 환하게 만든다. 혈압을 재는 것부터 시작하는 하루는 간호사의 첫 번째 업무가 끝나도 서로의 시간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이건 병실마다 다른 듯한데 엄마가 계신 방은 그랬다. 70대 ~ 90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방은 개별 커튼을 용납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려고 했다. 그 덕을 보기도 했지만 난 많이 힘들었다.
간호사의 첫 번째 업무가 끝나면 5시 15분이나 될까? 내겐 아직 많이 이른 시간이다. 밤사이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적어도 아침식사 전까지는 쪽잠이라도 더 자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 크신 분들은 소등을 원치 않으셨고 '안돼~~~'라고 소리치시는 것과 매한가지의 갖가지 소음이 시작된다. 볼륨 29로 높여진 TV소리, 쩌렁쩌렁 울리는 듯한 '까톡', '까톡'에 더해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안부 전화가 쉴 새 없다. 모르긴 해도 발이 넓고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다만, 목소리라도 조금 작게 해 주시면 좋을 텐데 서로의 대화가 다 들릴만큼이라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한 번은 간호사가 말하길, '이 방은 비밀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나 혼자만 조용히 웃었다.
엄마의 뜬금없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시는 분들이라 그 모든 소리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엄마의 소리보다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큰 소리라도 말이다.) 특히나 TV소리는 때론 자정까지 울려댔기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리를 피해볼까 싶어 한번은 엄마가 낮잠 주무시는 사이 휴게실에 가있기도 했지만 엄마가 찾으실까 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엄마의 소리도 들어야 하기에 귀마개도 할 수 없었고 이어폰을 하고 있어도 소리가 넘어왔으니 그저 빨리 퇴원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입원 9일째. 어깨는 많이 좋아지셨고 늑골은 보호대를 한 채 움직이지 않는 방법밖에 없으니 사진 촬영 후 퇴원일을 결정하자고 했다. 보호자이자 간병인으로 지낸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다. 입원기간을 일주일로 예상했기에 미룰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동생에게 교대 요청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