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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y 11. 2024

잘라낸 청바지 밑단이 예쁘다

그래서 이것을 살리기로 했다.

  안 입는 청바지가 많은 건 우리 집만이 아닐 것이다. 작아져서 못 입는 것도 있고 유행이 지나서 안 입는 것도 있다. 안타깝지만 낡아서 못 입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작아서 입는 청바지는 아이가 자라면 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대부분인데 아래로 갈수록 넓~~~ 어지는 청바지가 입고 싶다는 아이 때문에 모아둔 청바지 상자를 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입은 거지?' 30~40대에 입었던 건데 유행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입지 사이즈가 되었다. 대신 딸아이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여러 개의 청바지 아이가 원하는 디자인의 2개를 골랐고 품이 잘 맞는 하나의 길이를 줄여줬더니 잘 입고 다닌다. '이쁜 것!'





  길이를 줄였더니 잘라낸 청바지 밑단이 10cm 정도 되었다. 도톰한 원단인 데다가 자연스러움이 예뻐 생명을 불어넣기로 했다. 작은 동전지갑을 만들까, 카드 지갑을 만들까, 휴대폰 지갑을 만들까, 필통을 만들까... 누가 보면 쓰레기로 보였을 이것을 두고 볼 때마다 고민을 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두고 보다가 파우치를 만들기로 했다. 작은 카드지갑과, 휴대폰, 핸드크림 정도만 들어갈 파우치.





  지퍼를 고르고 드르륵 재봉틀로 박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째 맘에 들지 않았다. 결국 뜯어내고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더해야만 했다.





  원단 이음새는 자수실로 엉성한 듯 스티치를 넣어 장식하고, 지퍼를 열면 미소 지을 수 있는 예쁜 색상의 안감을 넣어 완성도를 높인다.





  너무 예뻐서 딸아이한테 보여줬더니 글쎄 표정이 좋지 않다. 갖고 싶어 하면 내것을 주거나 남은 원단으로 새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는데 시간을 벌었다. 대신 동생한테 보여줬더니 너무 예쁘다고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갖고 싶으면 만들어 주겠다고 했더니 당연히 갖고 싶다고, 대신 좀 크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더한다.





남은 원단을 알뜰히 이어 붙여 길게 만들었다. 가로로 지퍼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폭이 좁은 거뿐이라 세로로 형태가 되었는데 "난 가로로 긴 게 좋은데~"라고 말하는 동생.

"지퍼가 없다고!!!"



분홍색 지퍼는 내 거, 하늘색 지퍼는 동생 거. 사이좋게 하나씩.



  새 원단도 좋지만 남은 원단이 버려지지 않도록 쓰임을 더하는 건 지구 환경에 매우 유익한 과정이다. 버려지는 원단과, 원단이 버려질 때 채워지는 종량제 봉투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바로 생산단계에서 발생되는 에너지와 이산화탄소. 이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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