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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른손 Apr 11. 2019

<실연의 극복 - 흔적을 더듬다.>

04. 오류와 기억의 수정과정. 소라회와 청하

최근에 접해본 음식과 술의 궁합 중, 소라회와 청하의 조합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바다의 청량함과 동시에 강렬한 비릿함을 담은 그 뒷맛, 은은하고 담백한 청하 한 모금.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두 음식이 가지는 오묘하고도 강렬한 향이 입안에 꽤 오랫동안 남아있다는 점이다. 비리지만 자꾸 입맛을 다시게 되는, 특출나진 않지만 은은하게 깊은 맛을 내는 두 음식은 나의 선입견을 바꾸어 놓았다.


실연 후 우리는 여러 가지의 감정을 느끼고, 상대에 대한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그중 상대방과의 기억은 사태를 더욱 심화시키게 되는 요소 중 가장 대표적이다.


인연의 종착에서 헤어짐을 고하는 쪽이던, 받아들이는 쪽이던 그 이후는 모두 공통된 과정을 거친다. 단, 바람과 환승은 예외지만 말이다. 각자의 개성과 특징이 너무나 뚜렷한 두 객체가 만들어내는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와 추억들은 치매나 극심한 외상을 당해 기억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잊힐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가물가물하다'는 등의 말로 과거 연인과의 추억을 부정하곤 한다. 인간의 뇌는 영악하고 성능이 예상외로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기억이 완전히 '잊혔다'라는 현상은 성립할 수 없다. 기억은 언제나 조각조각 마음속 수만 가지의 방중 한편에 늘 숨어있다.


둘만의 기억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잔재한다. 아련하고 그리운, 고독하고도 슬픈,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이 포만스러운, 강렬하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다분히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그려지고 쓰인다. 이렇게 포장과 가공의 과정을 거쳐 기록된 기억들은 이별 후 2가지 완제품으로 출시된다. 비릿하고도 강렬한 기억, 달콤하고도 은은한 기억. 우리는 대부분 전자의 기억들은 애써 회피하고 아예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뇌라는 녀석은 '피하고', '제거하는' 식의 방식으로 기억을 처리하지 않는다. 3년이 지나고도 애써 감추었던 기억은 어느 날 밥상에 차려진 카레를 먹으며 불쑥 튀어나와 그녀를 떠올리게 하고, '아 걔가 카레를 못 먹었었지'하며 우리를 다시 절망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기억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녀석이다. 마음속 어딘가에 자신이 자리 잡고 있고, 건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녀석은 만족하며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이별 직후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추스르고, 극복을 그나마 가장 단기간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왜곡'하지 않고 기억을 '인정'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본다.


기억은 항상 마음의 정중앙, 가장 핵심부로 직진해온다. 이때 우리는 방향을 틀지 않고 2가지 모두를 그대로 들이받으며 외로움과 그리움을 극복할 수 있다. 처음 들이받을 때는 아리고, 쓰리지만 우리는 두 번, 세 번, 열 번 들이받다 보면 점점 고통에 면역이 생기고 아픔에 무뎌진다.


"맞아, 걔는 선지 해장국을 참 좋아했었지."

"서울대입구 그 커피숍에서 내가 먼저 고백했었지"

"제주도 하니까 우도에서 하루 종일 드라이브했던 게 생각나네."

"우리 헤어질 때 걔는 엉엉 울고, 나는 억울했었는데."

"참, 걔는 왜 그때 화를 냈는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처음에는 부정적이고 슬픈 모습으로 다가오더라도 기꺼이 마음을 내밀어 맞닥뜨리자. 자신의 특별한 해석,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그때의 공간, 냄새, 두 사람의 장면을 음미하라. 결국에는 마음속에 기억들은 처음의 그 뚜렷한 색을 잃고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기억이 '그냥' 기억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는 순간, 애써 찾지 않는 이상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반대로 기억을 지우고, 부인하는 방법은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만성적으로 느끼게 한다. 싸우면 싸울수록, 묻어두려 애를 쓸수록 기억은 커다란 반발 작용 일으킨다. 본래 기억은 타고난 카운터 펀치를 가지고 태어난 파이터다.


"왜 자꾸 그때를 떠올려! 이제 좀 그만해."

"미쳤나 봐. 빨리 공부나 해야지."

"내가 이럴 때냐, 빨리 업무에 집중하자."


이러한 기억의 억제 행위는 기억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고, 나를 향한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1달, 6개월이면 정리될 기억도 1년, 2년, 5년이 지나도 각별하고 특별하게 기억되어 우리를 만성적으로 괴롭히게 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애쓰지 말라. 비릿한 그날의 추억도, 달콤한 그때의 우리도 모두 다가오는 그대로 마주해라.

당시의 그와 나를, 추억의 모습 그대로만 인정한다면 실연 후 기억 주는 괴로움이란 특징은 언젠가 소멸한다.


나중에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갓 잡아 회를 뜬 소라와 술을 한잔 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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