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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Mar 21. 2022

일상의 초연함 ㅡ 2

외모에 연연하기 싫어서

평생 가장 많이 보고 살아야 할 얼굴은 자기 얼굴이다. 그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비극인가. 나는 내 얼굴이, 내 외모가 싫었다. 길을 걷다가도 쉽사리 우울해졌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 한순간으로 그날은 온종일 의기소침해져 있기도 했다. 나는 정말이지, 고작 그런 일로도 쉽게 하루를 망칠 수 있었다.                    





물론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화장이 잘 되거나, 머리 스타일이 잘 어울려서 괜찮아 보이면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어제는 썩 괜찮아 보였던 얼굴이 오늘은 못생겨 보이면 충격은 배가되었다. 얼굴부터 이미 마음에 들지 않으니 대충 살까. 내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포기해버린 사람은 그 누구도 일으켜 세워 줄 수 없다는 걸, 그때쯤 알게 된 것 같다. 






살다 보니 세상의 많은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건 사람일 때도 있었고, 다른 무엇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 대상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할 때, 결코 잘 만들어진 생김새에 감탄해 좋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을 좋아할 때에는 그 사람만이 가진 분위기와 매력을, 물건을 좋아할 때에는 그것이 주는 편안함을, 풍경을 좋아할 때에는 그곳에 담긴 추억을 좋아했던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보고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고양이마다 털 색깔이나 무늬에 대한 취향은 있지만, 고양이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아서 이 고양이는 예쁘고, 저 고양이는 못생겼음을 따진 적이 없다. 그저 고양이를 좋아한 것뿐이다. 고양이가 봤을 때에도 사람은 예쁘고 못생김의 구분 없이 ‘그냥 사람’이 아닐까?     




내가 장난치는 모습을 친구가 우연히 사진으로 찍어 준 적이 있다. 사진 속 나는 촬영 중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물건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느라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다. 짓궂은 표정을 한 나의 모습을 그때 처음 제대로 마주했다. 나는 사진 속 내 얼굴이 좋은 게 아니라, 내 표정이 좋았다. 짙게 화장하고 꾸며서 잘 나온 사진보다 그 한 장의 사진 속 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보다 표정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외모보다 함께했던 그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는 게 아닐까. 누군가가 지닌 특질 그 자체를 좋아했던 경험이, 누군가도 나를 외모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돌아온다. 거울 속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슬퍼질 때면, 내가 타인을 좋아하는 이유가 가장 위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을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경험이 자신을 바라볼 때도 같은 온도의 시선을 가지게 만든다는 건, 그래서 나에게 힘을 준다는 건, 내가 베푼 따뜻한 마음을 되돌려 받는 것 같아 스스로가 조금은 대견해진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전 내내 업무에 몰두하느라 거울을 볼 겨를이 없었고,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거울을 보게 되었다. 얼굴이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인상이 왜 흐릿해진 걸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알아냈다. 눈썹을 그리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우스웠고, 그것보다 더 우스웠던 건 오전 내내 나와 마주쳤던 사람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물론 알아채고도 알려 주지 않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걸 알아챌 만큼 내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본 사람이 없었다. 하긴 내 얼굴은 나에게만 중요한 걸 수도 있겠다. 누구도 나만큼 나를 빤히 들여다보지 않을 테니까. 그 사실이 묘한 기쁨과 약간의 허탈함을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자유가 주는 기쁨과 매일 아침 해 왔던 행위가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는 허탈함. 그런 거라면 눈썹은 꼭 그리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눈썹을 그리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은 나 자신이 썩 마음에 든다. 예전에는 화장이 지워졌는지, 머리는 괜찮은지 확인하느라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았지만 거울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싫었으니까. 지금은 거울 속에 어떤 내가 있든, 태연하게 눈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요즘도 거울 앞에 서면 내 몰골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거울 속에 오늘따라 못나 보이는 내가 이따금씩 도발을 해 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눈썹을 그리지 않은 정도의 가벼움으로 응수하려고 한다. 오늘 좀 못생겨 보이네.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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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위 일상의 초연함 시리즈 글은 책에 수록된 내용이 아닙니다. 그저 좋아서 가볍게 쓴 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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