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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nsoo May 14. 2021

단면 색종이 단상

안녕, 어디로 갈거니


글은 단면 색종이다. 조각을 기워 만든 조각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글 안에 숨을 곳이 생긴다. 쓰려고 하면 한꺼번에 일어서는 생각의 해일 앞에 한 줄 문장을 꺼내올 수 있다.


다른이에게 '당신은 참 따듯한 사람인 것 같아요.' 하는 말을 들으면 정말로 따듯한 그 말이 내 안에 흘러 들어와 차가운 마음에 닿는다. 나의 따듯함은 잘 녹는 눈사람의 정도가 아닐까, 낮은 온도의 피부를 가진 물고기의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나름의 온기는 모닥불 앞에 녹아 흐르고, 누군가의 따듯한 손길은 놀라도록 뜨겁다.


싫은 과거의 기억은 왜 끊어지지 않는 열차처럼 길게 연결되어 계속 같이 가야 하는 걸까. 창밖 풍경이 차갑고 어둡게만 펼쳐지는 칸은 뚝뚝 떼어내면서, 밝은 볕으로만 향하고 싶은데.


친구와 이야기했다. 지난 일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지금의 나에게 무겁도록 간섭하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지난날을 말하고 이해받고 싶어 지는 것일까. 친구는 나쁜 기억의 흔적을 이길 수 있는 좋은 기억의 흔적을 모은다고 했다.  좋은 기억이 슬픈 기억으로 변해지지 않도록 애쓰며 노력한다고 말했다.


나의 글은 단면 색종이다. 쓰고 지우고 자른 조각조각이다. 떨어진 조각을 서툰 솜씨로 기워 만든 조각보다. 왜 단어가 떠오르는지 왜 문장을 쓰고 싶은지 무엇이 될지도 모르고 쓴다. 다만 꼬깃꼬깃 꺼내고 밀어낸 이야기가 바깥에 닿아 다른 형질이 되어 길을 떠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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