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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14. 2021

글이 막히는 날, 아티제 에이드와 하루키 에세이

글은 탁 트인 카페의 나무 의자에서 가장 잘 써진다. 이 시국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카페에서 혼자 시원한 음료를 보내며 보내는 나지막한 시간이다. 책이나 글이 함께하면 더 좋다. 집 밖으로 나온 게 찔리긴 하니까 변명스레 덧붙이자면, 사람 없고 넓은 카페에서 마스크 잘 쓰고 있었답니다.


오늘은 글을 쓸 기분이 아니라 노트북 없이 책 한 권만 들고 집을 나섰는데 결국 쓰기의 부름을 받고 말았다. 근처 다이소에서 각각 1천 원을 주고 노트와 펜을 샀다. 글은 써질 때 써야 하는 법이라 2천 원 아낀다고 글을 미룰 수는 없다. 늘 가는 스타벅스에 갈 생각이었는데 충동적으로 눈앞 아티제로 발길을 돌렸다. 학생 때는 비싸서 한두 번밖에 못 가본 곳인데 오늘따라 널찍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이 동네 스타벅스는 항상 포화 상태다. 언제 가도 복잡스럽고 사람이 꽉 차있다. 그런 어수선함이 당기는 날도 있지만 기상과 함께 확진자 수 안내 문자를 받고 난 참이라 내키지 않았다.


메뉴를 보니 파란색 신메뉴 에이드를 사면 향수 샘플을 준다고 한다. 공부하는 동안 잠들었던 중산층적 취향이 꿈틀거린다. 수도권에는 이런 삶이 있었지. 한참 책과 족보와 공부에 갇혀 사느라 잊고 있었다. 새파란 에이드와 베르사체 향수의 콜라보가 꽤 어울린다. 향기도 파란 음료만큼 새콤달콤할지 궁금하다.


이 작은 음료 한 잔에 6천3백 원. 아직 대학생인 내게는 비싸다 싶지만 한 권을 다 읽고 글감도 얻었으니 괜찮은 투자다. 가져온 책은 하루키의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어젯밤에 아버지께서 읽어 보라고 건네주셨다.


아버지는 하루키를 좋아하신다. 집에 하루키 책이 거의 다 있다. 나도 몇 권 읽어봤는데 산문은 취향이지만 소설 쪽은 뭐랄까, 좀 끈적끈적하게 눌어붙은 아저씨 감성 같달까. 홀아비 냄새 같은 그런 느낌. 나한테는 좀 거칠다. 아무튼 산문은 재미있으니까. <내가 사랑한 티셔츠>도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구아바 썸머 에이드와 <무라카미 T>. 읽을 때는 '내가 사랑한 티셔츠'가 책 제목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무라카미T>가 제목이고 '내가 사랑한 티셔츠'는 부제라고 한다.


요새 글 쓰는 게 어려웠다. 첫 책이 될 글을 쓰고 1년이 지났다. 또다시 책을 쓸 수 있는 여유시간(여름방학)이 생겨 이래저래 기획도 해 보았으나 영 손에 잡히질 않았다. 쓰는 게 어렵다면 읽기라도 해 보자는 마음에 본가에 돌아온 이후로 카페에서 책 읽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하루키 산문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 참 쉽게 쓴다. 진짜로 쉽게 쉽게 쓰는지 아니면 그 또한 수십 번을 고민하고 한 문장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읽기에는 그렇다. 그래서 하루키의 산문을 좋아한다. 대단한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편안하고 친근하다. 나랑은 거의 50살이 넘게 차이나는 중년 남성인데도 어쩐지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걸까? 나는 소설 독자가 아니니까 소설 쪽은 잘 모르겠지만.


옷장의 티셔츠로도 글을 쓴다. 그것도 재미있게.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일단은 그냥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보는 거야. 못 쓰면 어때. 쓰면서 즐거울 테니까 그거면 됐지. 책이 되면 더 좋겠지만. 너무 잘 쓰려고 부담 갖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아티제에 오기 잘했다. 어쩌면 올 여름, 책이 될 글을 이곳에서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집 가는 길에 로드숍에서 널찍한 티셔츠도 한 장 사 가야지. 이걸로 됐다. 고마워요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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