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에 브런치 첫 글을 썼으니 슬슬 글을 쓴 지 일 년이 되었다. 일 년 동안 출판사와 계약해 공부 관련 서적 한 권을 출간했고 크몽을 통해 전자책 두 권을 등록했다. 특별할 것 없는 20대 중반인 내게는 꽤나 만족스러운 성과다. 책을 내고 싶다는 평생의 꿈을 이루었고, 전자책을 통해 작지만 꾸준한 부수입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책을 낸다고 작가가 된다고 세상이 180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조금은 바뀔 것 같았다. 꿈을 이루었다는 만족감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우울을 잠시나마 쫓아주지 않을까 기대했고, 쉼 없이 태어나는 욕심이 잠시나마 자리를 감추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매일이 졸립고, 고되고, 종종 우울한 그대로다. 어쩌면 의대생 신분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충족이 덜 된 거다. 출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나의 첫 책, <나는 어떻게 미대생에서 의대생이 되었을까>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였다.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을 성공시킨 경험을 나누고 싶었고,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책으로 완성된 1년 간의 공부 기록은 분명한 완결점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나의 고민과, 생각과, 정서는 완결 지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애매하고 모호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뚜렷한 완결점이 없더라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일 지 모를 고민과 생각들도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에세이를 써 보고 싶다는 거다.
에세이란 무엇일까? 나는 에세이를 잘 모른다. 어떤 글이 에세이고 어떤 글이 아닌지 그 경계를 잘 모르겠다. 때론 장르가 두루뭉술한 글을 묶어 부르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잘 쓴 에세이(에세이라고 추정되는 글)을 읽으면 마음이 시큰하다. 아무튼 좋은 에세이-좋은 글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내 나름대로 에세이를 정의해 보자면 '타인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모든 글'이 아닐까 싶다. 잔잔한 일상의 서술이나 격한 감정의 묘사, 특별한 경험이나 깨달음을 서술한 모든 글이 에세이라는 장르로 묶인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장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막상 자유롭게 글을 써 보려고 하면 걱정이 앞선다. 내가 나누려는 이야기가 타인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자기 연민만 쏟아내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나 할까. 아니면 내용이야 어찌 됐든 글을 너무 못 쓰는 건 아닌지. 글쓰기에 영 재능이 없는 건 아닐지. 심하게는 이 모든 고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의대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맞는건 아닐까. 등등. 몇 자 쓰기도 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삶을 택하기로 했다. 쓰다 보면, 쓰고 또 쓰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당당하게 내 글을 읽어 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에세이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글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쯤이면.
서점의 수많은 책들 중에 한 권 정도는 내 이름이 쓰여 있는 책이어라. 그런 꿈을 꿨었다.
언젠가는 꾸준하게 책을 내는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 온갖 주제의 글들을 자유롭게 써내고 책이라는 형태로 물질화하고 싶다. 책 한 권 냈다고 끝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첫 책은, '공부'라는 주제에 마침표를 찍고, 이제는 더 다양한 삶의 주제들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꿈을 이루고, 또 하나의 꿈이 생긴다. '언젠가는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