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필명, 그리고 정체성에 관하여
출판사와 함께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바로 필명(저자명)이다.
기존에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썼던 닉네임인 '플람'을 사용했었다. 플람은 'flame'을 다르게 읽은 것이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할 즈음엔 거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만 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뜨거운 열정을 전달할 수 있는 불꽃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런데 다음 주 금요일에 책을 내게 되었다. 작년에 쓴 글이 거진 1년 만에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 데뷔작이 될 터였다. 바라는 대로 된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 모든 책들이 나라는 한 명의 개인으로 묶이기 위해서는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저자'의 이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기존의 닉네임(플람) 그대로 낼까도 생각했었다. 이 이름으로 오랫동안 블로그 활동을 해 왔고, 브런치에도 같은 이름으로 글을 기재해 왔으니까. 그런데 막상 오래 써왔던 닉네임이 실제 무게를 가진 종이책의 표지에 인쇄되는 상상을 해 보니 어색함이 가시질 않았다. '플람'이라는 닉네임은 인터넷에서 쓰기엔 괜찮지만 책이라는 매체에 적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인터넷 닉네임을 연상시키는 필명이 독자와의 진지한 소통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됐다. 또,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주제로 책을 만들게 될지 모르니 어떤 글과도 어울리면서도 내 글의 성격과 정체성을, 혹은 지향점을 드러낼 수 있는 필명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실제 이름을 그대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을 살아가는 '나'와 글을 쓰는 '나'를 구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너무 흔한 것도 실명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실명은 아니지만 실제 사람 이름 같은 필명을 원했다. 그렇게 '김유연'이라는 이름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개명을 바랐다. 한국에서 너무나 흔하고 또 여성적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독특하고, 개성적이고, 중성적이며, 유일한 이름이기를 바랐다. 개명한다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 평소에 이런저런 이름을 생각해보고는 했다. 김유연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들 중 하나이다. 웃음 유, 인연 연. 웃음으로 만드는 인연. 많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기보단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름이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싶고, 더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함께하고 싶다는 모순된 욕구. 김유연이라는 필명은 그러한 욕구에서 만들어졌다.
요즈음 서점을 둘러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욕구를 느끼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함께하고 싶지 않다. 연결되고 싶지만 단절되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한다는 건 인간 근원의 정신이 연결과 단절을 동시에 바란다는 게 아닐까. 그 모순된 욕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연을, 연결을 추구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책이 그 통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저자명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
나의 첫 이름은 까마득하게 어릴 적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지어졌다. 그러나 필명은 나의 의지로, 나의 소망과 정체성을 담아 스스로 지어주는 두 번째 이름이다. 이 두 번째 기회에 인연에 대한 소망을 담기로 했다. 김유연이라는 이름은 '글을 쓰는 나'의 정체성이 되고, 앞으로 쓰일 나의 글들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고 있다면, 그리고 그 글이 책으로 엮이기를 바라고 있다면 한 번쯤은 이름과 필명에 대한 고민을 해 보기를 권한다. 이름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저자의 이름인 '필명'은 나의 '글'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타인의 글과 나의 글을 구분 짓는 경계가 된다. 필명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의 애정과 시간을 쏟을 만큼 충분히 마음에 드는지 생각해보자. '나의 필명은 내 글을 한데 모아 책으로 엮었을 때, 이 모든 글들을 대표하기에 적절할까?'
'저자 김유연'은 그 답을 내었고, 김유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통해 더 많은 독자분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글과 책이 더 많은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글을 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곧 나올 책도, 앞으로 나올 글들도, 책들도,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김유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