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정체 파악하기
카페에서 가능한 구석 자리를 골라 앉는다. 콘센트가 있으면서 어떤 각도에서도 다른 사람이 내 노트북 화면을 볼 수 없는 곳이 가장 좋다. 누가 노트북 화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부끄럽고 민망하고, 사생활을 침해당하는 기분이 든다. 급기야는 자리를 옮기고 싶어 진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다가 내 노트북 화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자리에 사람들이 앉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쓰고 있는지가 훤히 보일 것 같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면 어쩌지? 내가 이런 일을(이게 뭐라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뿐이다)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2층으로 내려갈까. 그냥 집에 갈까. 아직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는데. 어떡하지.
스스로도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노트북 화면을 보인다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옆자리의 사람들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그 반대보다 훨씬 높다. 또 나를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있지 않다. 게다가 타인이 신경 쓰인다면 아예 공개된 장소인 카페가 아니라 집에서 작업을 했어야 한다. 그러니 타인이 내 노트북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느끼기 시작한 이 감정은 지나친 걱정이고 지극히 불합리하다.
이 자의식 과잉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왜 아직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히며 일상을 방해하는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싫다'는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를 알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새 창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로 타인이 불편하다. 그 사실에 대해서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불편하며, 불편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가? 이때 불편감을 일으키는 '타인'은 특정한 누군가라기보다는 특정한 몇몇을 제외한 전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타인과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편감을 느낀다. 특히 타인이 나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 또는 상황에 있다면 불쾌함과 거부감이 든다.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는 그냥 '싫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 '싫다'는 애매모호한 감정의 정체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두려움인 것 같다. 내가 잘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타인이 나를 평가할 것이며 그 평가가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혹은 나에 대한 사적인 정보가 약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타인이 나를 아는 것을 거부하게 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온 세상이 위험이고 새로운 타인은 경계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를 생각하면 명백하게 아니다, 라는 답이 나온다. 먼저 두려움을 일으키는 상황이 사실인지 생각해보자. 나는 대체로 타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인가? 그렇게 믿던 때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내향적인 성격이 부정적인 인상을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의 다른 개성에서 매력을 느낀 사람들도 많았다. 나의 내향적인 면은 정직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읽힐 수도 있었다. 성격 외의 수많은 장점도 가진 사람이었다.
한편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본능적으로, 때론 자신도 모르게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이는 불변하는 평가가 아니며, 또 그 사람을 대하는 데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또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이 누군가에겐 싫은 사람이 되고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을 보면 평가라는 것이 너무나도 주관적이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모두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이지 못한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마땅치 않은 일이다. 실제로 타인이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대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타인이 나를 좋아할지 싫어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연연해봐야 괴로움만 커질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고 의도치도 않은 일로 나에 대한 평가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휘둘리기보다는 그저 내 할 일을 잘 마무리하고 내가 편안한 대로 사는 것이 옳다.
결론은 옆 자리에 갑자기 앉은 사람들 때문에 노트북을 접고 2층 자리로 옮기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웃기게도 이 글을 다 쓰고도 불편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옆자리 사람들이 볼일을 끝마치고 카페를 나서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감정이 이성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 건가 보다. 아니면 이 대답도 충분치 못하거나.
남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몇 살이나 되어야, 얼마나 경험이 쌓여야 가능해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두려움을 마주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며 나의 삶을 사는 것뿐이다. 별 거 아닌 일로 예민해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고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인정해주면서 해결책을 찾아가자.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잘못되었다고 비난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자. 이게 평생 해결해야 할 내 삶의 과제라면 아마 한 두 번의 글과 성찰로는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 평생 숙제라고 생각하고 조급해하지 말자.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믿자. 아무튼 자리를 옮기지는 않았으니까, 아주 조금은 발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