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고양이 똥을 치우는 것
거창할 것 없는 삶의 의미
자주 삶의 의미를 고민한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은 것 같다가도 어느새 다른 정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에 이유를 붙이지 않고서는 잘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글을 쓰는 일도,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거나 단체생활에 참여하는 것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나서야 제대로 임할 수 있다. 그러니 끊임없이 삶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삶에 제대로 집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각자 수많은 삶의 이유가 있고 추구해야 할 가치를 찾아간다. 나는 아직도 내 것을 찾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기도 하고 스스로 궁리를 해 보기도 한다. 이유 없이 그냥 하면 안 되나? 태어났으니까 그냥 사는 거지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나. 김연아도 '그냥' 한다잖아. 그게 정답 같다가도 역시 이유가 없으면 공허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최근 꽤 정답에 가까워 보이는 문장을 얻었다. 매일 하는 고민을 전화를 통해 아버지와 나누었던 날이었다.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직까지 이 학문에 그리 정이나 재미를 붙이지는 못하였다고 어떻게 살면 좋겠는지 여쭤보았더니 아버지께서 삶은 그냥 너가 고양이 똥 치우는 거라 하셨다. 이번 방학에 데리고 있어 보니 똥 냄새 너무 난다면서. 자주 똥 치우고 집도 좀 치우라 하셨다. 매일 아침이든 밤이든 시간 될 때 냄새나는 고양이 똥 냄새 안 나게 치워 주는 거. 그게 사는 거라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다음 날부터였나 그 말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이나 수업 끝나고 검은 비닐봉지에 고양이 똥을 담고 꽉 묶어서 종량제에 넣어서 버린다. 하는 김에 플라스틱 쓰레기도 따로 모아 나간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한다. 시간과 체력이 남아있으면 청소기도 한 번 돌린다. 3일에 한 번은 빨래도 하고. 아침에 세탁기를 돌리고 점심시간에 집에 와 빨래를 널고 다시 수업을 들으러 간다. 그건 그냥 해야 하는 거다. 이유가 너무 단순하기에 굳이 말로 풀어 붙일 것도 없는 행위. 행하기 전 언어로 된 생각이나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그런 일. 그렇게 살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목표를 쫓는 것도 꿈을 찾는 것도 좋지만 삶의 근본적인 모습은 오늘도 내일도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매일 양치를 한다거나 바닥에 쌓인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삶의 이유나 목적 같은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나의 행동양식과 태도, 그 결과에 따른 기분을 살피면서 나의 목표와 행복을 찾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형이상학적 고민의 기저에는 매일 살아가야 하는 일상이 있다. 그것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다면, 일상의 매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면 꽤나 지루하지 않은 만족스러운 삶이 되지 않겠는가.
거창한 이유를 찾느라 하루를 통째로 생각에 잠겨 보내는 것보다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무심하게 처리하는 것이 충실한 삶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머릿속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너무 꽉 차게 자리 잡고 있으면 정신의 절반 정도는 이 질문을 생각하느라 해야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꺼지지도 않는 이상한 프로그램이 CPU의 50%를 잡아먹고 있는 것과 같다. 남은 50% 가지고 온갖 일을 처리해야 하니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당장 답을 알 수도 없고 위급하지도 않은 질문은 CPU의 10% 정도만 사용하게 두고 나머지 90%는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10%로 가동 중이던 의미 찾기 프로그램이 우연한 깨달음의 순간이 올 때 놓치지 않고 기록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역시 현재를 충실히 산다는 삶의 방식의 합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 혹은 붙이기 위해 쓰인 글이다. 슬슬 받아들이고 있다. 답이 없는 고민을 계속 생각하는 것은 괴롭고도 즐거운 일이며, 나는 그러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이것 역시 내 삶의 과제 중 하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