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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15. 2021

어쩌면 언어배달부

언어와 처음 만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내가 독서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언어화’이다. 쉽고, 간결한 말로 내가 아는 뭔가를 어린이에게 전달한다는, 쉬운 단어일지라도 ‘사전적 정의’를 정확히 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미사여구를 쓰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먼저 알게 된 세계의 일부를 어린이들의 세계 앞으로 배달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게 내가 할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 수업에서 수많은 단어들과 첫 만남을 할 어린이들의 뜻깊은 첫 순간을 훼손할 순 없기 때문이다.     


수업 중에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습관적으로 ‘OO적’ 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또 써버렸다) 추상적. 궁극적. 물리적, 개인적, 일반적 등등. 수업에서 꼭 필요한 어려운 어휘들이 등장할 때도 있지만 ‘이게 꼭 지금 필요한 말이었을까’ 하는 순간들도 있다. 혹시 자세한 어휘 설명을 피하기 위해 어려운 단어들을 조합해서 하고자 하는 말을 뭉뚱그리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건 너무 감으로 얘기하는 게 아닐까. 그럴 때면 꼭, 똑 부러지는 녀석들의 질문이 들어온다. ‘추상적이 뭐예요 쌤!’   

  

고비는 또 있다. 익숙하게 쓰는 단어이지만 막상 설명할 때 느끼는 어려움을 직면했을 때이다. 초등 4학년 수업에서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과학’ 에 대한 주제에 대한 글을 읽다가 김치가 ‘발효’식품이라는 말이 나왔다. 발효식품의 종류는 줄줄 말할 수 있지만, 막상 발효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은 나는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얼마든지 얼렁뚱땅 넘길 수는 있다. ‘발효가 발효지 뭐야. 그 막 있잖아, 요구르트랑 된장, 치즈 같은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설명한다면 나는 선생님으로 있을 자격이 없다. 발효식품만 나열했을 뿐 발효에 대한 설명이 전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 연구를 할 때면 내가 어떤 단어가 와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저학년 수업이라고, 별 준비 없이 들어갔다가는 어린이들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맥없이 주저앉게 된다.     


난감한 경우는 따로 있다. 언어를 익히는 어린이들의 태도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지인: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도깨비 아저씨는 이기적인 면이 있는 거지.

땡땡: 이기적이 뭐예요?

지인: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 남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 좋은 모습은 아니야.

땡땡: 근데 그게 나쁜 거예요? 왜 좋은 모습이 아니죠?

지인: 땡땡이 생각은 어떤데?

땡땡: 남들까지 생각하면 요새는 호구라고요! 전 이기적인 사람이 될 거예요.     

물론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럴 때 나는 고민하다가, 땡땡이한테 한 번 더 반문하고 만다.     

지인: 좋아. 이기적으로 살 순 있지. 그렇지만 땡땡이한테 누군가가 ‘넌 정말 이기적인 사람’ 이라고 해도 땡땡이 기분이 괜찮을까? 땡땡이가 원한 삶의 방식인데도? 괜찮지 않다면 왜 괜찮지 않은 걸까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     


이럴 때는, 단순한 단어의 정의를 넘어서 단어의 쓰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는 순간이다. 언어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어린이들에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태도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으려면 나 자신이 좋은 어른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 역할이 더 막중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초5 학생들과 『난중일기』를 읽다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무려 7년 동안 일기를 썼다는 얘기를 전하다가 은채가 분노하며 외친 적이 있다.     


“아니 바빠죽겠는데 전쟁이나 할 것이지,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7년이나 헛짓거리를 했대요?”     


나는 이순신 아저씨가 ‘헛짓거리’를 한 것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유대인 소녀가 나치의 박해에 피해서 쓴 『안네의 일기』 까지 예시로 들며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나의 열띤 설명을 듣던 은채는, 그제야 분노를 가라앉히며 자신도 코로나라는 재앙을 겪고 있으니 나중에 ‘은채의 일기’를 내겠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언어라는 것은 생각을 확장하게 만드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더불어 한 사람의 세계를 대변한다. 수업이 점점 많아지고, 어린이들 앞에서 서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내 자신을 점검하게 된다. 나의 언어는 잘 쓰이고 있을까. 잘 전달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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