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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19. 2021

얼굴이 귀한 시대

마스크 안에 숨겨진 너의 점이 귀여워


출처 pixabay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틈을 타 슬쩍 마스크를 내려 물을 마시는데, 가온이가 소리친다.     


“어? 나 쌤 옆모습 처음 봤어요!”     


가온이는 코로나가 심해진 이후 들어온 학생이었다. 가온이에게 옆모습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이 왔다.     


“쓴 게 나아요!”     


가온의 말에 뾰로통해 있자 가온이가 슬쩍 레몬맛 사탕을 내민다. 삐진 선생님을 달래려고 노력하는 가온의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나는 학생들의 얼굴이 궁금하다. 가려진 반쪽짜리 얼굴이 아닌 온전한 얼굴.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자 했던 온라인 수업의 유일한 좋은 점이 있었다. 어린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마스크가 내려갈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얼굴을 본다는 것.     


며칠 전에 유리가 슬쩍 다가와 나에게 귓속말을 속닥거렸다.     


“쌤. 그거 알아요? 현빈이 볼에 엄청 큰 점 있어요.”     


그래? 그게 뭐라고……하고 웃어넘겼는데, 정말? 하는 생각이 스쳤다. (현빈이는 2학년이라 온라인 수업을 하지 않았다.) 문득 현빈이 볼에 있는 커다란 점이 너무 궁금해진 것이다. (현빈이의 볼살은 포동포동한 편이라 평소 마스크 사이로 볼록,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업시간, 현빈이에게 물었다.     


“현빈이 볼에 큰 점이 있어?”

“네! 보여드릴까요?”     


현빈이가 금방이라도 마스크를 내릴 채비를 해서 나는 황급히 안된다고 말렸다. 그러자 유리가 옆에서 제안했다.     


“쌤, 그러면 이거 어때요. 저어기 현빈이 혼자 교실 뒤에 있고, 우리 셋은 칠판 앞에 모여서 숨을 참는 거예요! 숨 참으면 코로나 안 걸린대요.”     


숨을 참는다고 코로나에 안 걸리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가 충분한 거리를 두고 현빈이의 점을 보기로 했다. 현빈이가 마스크를 다 벗는 게 아니라 볼만 슬쩍 보여주는 조건으로. (점 보기가 이렇게 어려운 세상이라니…….)     


현빈이가 오른쪽 볼을 쓱 내리자 삐죽 점이 하나 보였다. 현빈이의 동글동글한 얼굴과 아주 잘 어울리는 복점이었다. 현빈이도 자신의 점이 마음에 드는 듯 빙긋 웃었다. 현빈이의 점을 본 유리와 정은이가 자신들의 얼굴 점도 공개하겠다고 해서, 다음부터는 사진으로 대체하자고 하고 급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수업에 난감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누군가 말을 했는데, 입 모양이 보이지 않아 누가 말했는지 되묻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표정이 읽히지 않아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시험이 끝나면 진행했던 과자파티를 할 수가 없어서 원성이 자자하다. 과자파티 때마다 자신의 용돈을 쪼개 친구들을 위해 과자를 왕창 샀던 인환이는 ‘도대체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 끝나요’라며 탄식한다. 이놈의 코로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과자파티까지 몽땅 삼켜버렸다.     


얼굴이 귀한 시대가 올 줄은 몰랐다. 점 하나를 보기 위해 모두가 마음을 먹어야 하는 시대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미 와버렸으니 귀함을 온전히 느낄 수밖에. 곧 얼굴들을 만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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