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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달 Aug 22. 2023

[오늘독서] 한 잔의 물 같은 철학

이서규: 쇼펜하우어 철학이야기



 쇼펜하우어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니었다. SNS에서 보게 된 쇼펜하우어 책 광고가 눈길을 끌어 무작정 도서관을 방문했는데, 아직 신간도서라 도서관에 없는 걸 알고 아쉬움을 달래러 '쇼펜하우어'라는 이름으로 검색되는 책들 중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책을 하나 골라 읽게 됐다.


 철학은 고3 때 전공으로도 한 번은 고민해 봤던 적이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어보겠군 싶었는데 웬걸. 글을 읽는데 뇌가 소화를 못 시키는 느낌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은 이해가 되는데, 중간에 한 문장이라도 놓치는 순간 내가 무얼 읽고 있었지? 싶으면서 한 페이지가 리셋되는 순간들이었다. 책을 덮을 때마다 반복등장했던 단어(충분근거율, 예술, 의지…)들만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어렴풋하게 가닥을 잡을 것 같은데 어렵다-라기보다 모르겠다. 나무 하나라도 살펴보는 감상이 되지 않고 책 전반에 대해 겹쳐지는 생각은 '내가 철학을 만만하게 봤구나.' 철학과 나오면 무얼 먹고 사냐는 전공별 유머가 한 때 유행했는데, 그냥 철학을 공부한 사람을 존경하기로 했다. 논리를 따라가면 눈이 코가 되고 코가 입이 될 것 같이 뒤죽박죽 되어 혼돈한 그 논리들을 차근차근 탐구해 왔다니! 나는 전공서적도 아닌 그나마 말랑한 책 한 권에 이렇게 어질어질한데.  


 그나저나 철학이나 삶에 대한 고찰을 이어가고 결론을 내린 사람들은 왜 이리 우울한 생애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철학자 중에 행복한 삶을 살면서 삶에 대한 이론을 마련한 사람은 없는 걸까? 부모나 여타 가족, 친구, 이성을 통해 겪은 우울한 경험을 하나둘씩 꼭 갖고 있다. 그래서 비관적인 정서가 삶, 인간관계와 신체에 대한 고찰에 모두 쪼개어 스며들어가 있는 듯하다. 비슷한 삶의 모습이더라도 종교인으로는 행복한 삶을 마무리한 분들이 있는 것 같긴 하다만 행복한 철학가 아신다면 누가 좀 알려주세요.


 또 쇼펜하우어가 그 시대부터 현대인에게까지 사랑받는 혹은 크게 동감받는 철학자라는 걸 실감했다. 나만 이제 알았는지도. 별다른 휴가 없이 주말에 친구와 집에서 아무 계획 없이 놀기로 했을 때, 쇼펜하우어 책을 꺼내드니 친구가 무척 반가워하며 본인도 쇼펜하우어의 책을 몇 권씩 읽었고 그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자신도 동조한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모르겠는 나는 입틀막 하면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친구는 '불행'에 포커스가 맞춰있었다. 그렇게 비관적인 사람들이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동감을 많이 하게 되는 건가.


 나도 그런 카피라이트에 끌려 쇼펜하우어 책을 찾았던 것이라 책을 읽을 때보다 내 친구와 나를 보며 더 생각을 골똘했다. 나에게 큰 시원함이나 위로를 남기진 않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살면서 느낀 바를 답습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약을 먹기 위해 마시는 물처럼 무색무취무맛. 내 삶도 나에게 지금 그런 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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