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면사무소 공무원의 주말 당직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주말 당직의 순서가 돌아왔다.
우리 지역 면사무소의 주말 당직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서 대기하며 근무를 하는 것이다.
일당은 6만원. 시급 6,666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뭘 하든 상관없으니 적당한 페이인가.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이라는데..
훌쩍.
그래도 오늘 근무하면 다음 주중에 하루 대체휴무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인 것이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관광지가 없는 시골이라 주말에 여는 식당이 없다.
어제 갑자기 잠봉뵈르가 먹고싶어서 사둔 재료들로
아침에 일어나 베이글 잠봉뵈르를 만들어 보았다.
뿌듯-
남편 것도 하나 만들고 아이도 베이글 하나 쥐어주고
내 점심용 잠봉뵈르도 종이호일에 잘 감싸서 챙겼다.
나름 부지런한 아침이었군.
여튼 출근!
아무 사건, 사고없이 잘 지나갔으면......좋겠지만
이장님 모친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상부에 보고할 자료를 작성했다.
또 따르릉.
며칠 전 모로코 지진으로 2천여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북아프리카 먼나라의 지진으로 인한 피해자가
혹시라도 관내에 있는지 이장님을 통해 확인해달라고 요청해야한다.
거기에 저번주 하루하고 반나절, 아이가 아파서 쓴 휴가때문에
밀린 일들도 처리하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이 상태로 집에 가면 육아할 때 퍼질텐데..
그 때,
같이 근무한 적 있었던 상사분께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술을 한 잔 하셨나보다.
'아직 오전 11시인데 어쩐 일로 술이세요?'
'아 벌초하러 왔다가 한 잔 했지.'
그러고는 나의 업무 스타일이 적잖이 맘에 드셨는지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아쉬움과 함께.
육아휴직 때도 한 번 전화오셔서 저런 내용의 대화를 했었는데
그땐 육아가 힘들어서 '일하고 싶다. 공허하다.'고 느낄 때라
나를 잊지 않아주신 것과 칭찬에 감사하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듣는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죄송했다.
육아와 일의 병행이 힘들고
이 일과 조직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한 터라
몇 년만 더 근무하고 나가고 싶은데...
여기 더 오래있을 생각이 없는데..
가슴 속에 무거운 돌을 얹은 느낌이었다.
실컷 가르쳐놨는데 나간다하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실까.
정든 여기를 두고 어떻게 떠날까......
근데 대체 이 분은 내 상태를 어찌 알고 중요한 순간에 전화를 딱딱 주시는지.
별로 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시키는 대로 군말없이 하고
수다스런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
수다가 길어질 때는 모니터만 보고 영혼없이 들어주긴 했지만..
'에이, 그래도 뭐 어떡해. 정든 사람을 떠나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