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슬아'의 출판사가 굴러가는 모습
작가 '이슬아'에 대한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20대에 스스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이메일로 글을 보내는 주는 방법으로 독자를 모집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현재 개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책을 큰 출판사에서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플랫폼을 통해 생산해낸 아이디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글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수많은 글과 책 중 가부장제의 타파에 관한 소설이 흥미를 끌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 속 배경은 현실 '이슬아'의 출판사이자 가정집이다. 그 곳엔 모부이자 직원 복희와 웅이가 있다.
현재의 집으로 이사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한 집에 살면서 각자의 역할과 일상을 보여준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딸 '이슬아'가 집 주인이자 가장이 되었는지 소설 속에 나타난다.
# 슬아는 복희의 살림 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 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대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p. 40) #
살림 노동에 월급을 산정하는 것에 대해서 공감하는 바이다. '슬아'는 글 쓰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그 외에 것들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일'을 모부에게 일임하며 생활비나 용돈을 주는 것이 아닌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월급'을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출판사에서 복희는 부엌일과 메일 보내기 담당, 웅이는 청소 빨래를 담당한다. 복희의 월급이 더 많은 이유는 슬아가 보기에 부엌일이 더 힘들고 가치가 있다고 느껴서가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작가의 나르시시즘과 고용자로서의 태도 때문에 뭔가 모르게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돈을 가진 자들의 거만함, 가사 노동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가사 노동 후의 쉼을 게으름으로 은근히 비꼬는 태도 때문이다. 나도 타인을 그렇게 은연중에 보고 있지는 않았나 곱씹어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 그는 이제 노가리를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들 일만 남았다. 슬아는 문득 웅이의 삶이 좋아 보인다. 문예창작과에 다니다가 중퇴하여 문학과는 동떨어지게 된 삶, 몸 쓰는 노동으로 정직하게 돈을 버는 삶, 비정규직으로나마 딸의 출판사에 취직하여 가장 잘하는 일을 가뿐히 수행하는 삶.(p. 20) #
자신은 일 외의 시간에 요가와 낮잠 등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서술하면서 모부들은 퇴근 후 야식을 먹고 TV를 보며 너무 크게 웃어서 자신이 글 쓰는데 시끄럽다고 한다. 자신은 글을 마감 직전까지 전투적으로 써내서 돈을 전투적으로 벌지만 웅이는 잘하는 일을 '가뿐히' 수행한다고 묘사했다. 왜 '가뿐히'라는 표현을 썼을까.
식당 이모님이 왜 '고모'가 아니고 '이모'인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생방송 중 사전 약속없이 노브라를 감행하는 치기에 혀를 차기도 했다. 동물과 여성은 소중히 여기면서, 생방송 중 그런 일로 인해 피해볼 방송국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중성에 놀랐다. 노브라를 찬성하는 것은 좋으나 사전에 동의 된 장소에서 개인적으로나 다른 방식으로 노브라 운동을 펼쳤어도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내내 불편하면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않은 이유는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출판사의 모습 때문이었다. 사랑스러운 복희와 웅이가 있고, 서재가 있는 가정집이자 출판사. 따뜻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 공간에 애정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도록 만드는 작가가 매력적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글을 많이 쓰기로 유명하다. 그녀가 궁금하고 어떻게 글을 생산해 내는지, 그녀의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가부장제도의 깊이 있는 성찰이라기 보다는 아빠가 돈을 벌어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이 아니라 딸이 돈을 벌고 가정을 이끄는 조금 색다른 가정의 모습이 궁금한 분들께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