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집안일을 하찮게 여기는 배우자에게 보여주십시오. 오히려 갈등만 더 커졌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그렇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네요. 내게도 댓글이...*
분명 나도 역시 '정리 안 하면 다 갖다 버린다'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들어왔다.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좀 치우라는 엄마의 말에, 화장실 바닥에 머리카락 좀 있는 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바락바락 대들었었다. 허나 결혼을 하고 난 후 내 집(내가 안치우면 아무도 안 치워주는 집) 화장실에난잡하게 흩어져있는 머리카락들은 존재해서는 안 될 눈엣가시이다. 밥 먹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폭발직전으로 변조되어야 비로소 들어 올렸던 '무거운 나의 엉덩이'는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엄마 엉덩이'가 되어 집안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쑤시고 다닌다.
요즘 기술이 워낙 발달해 가전제품이 알아서 집안일들을 해주고는 있다. 하지만 '별로 할 것도 없는 집안일'이라는 오명만 받은 채 여전히 많은 집안일을 하는 것 같은 것은 느낌 탓일까. 부부싸움 원인의 1순위가 아닐까 싶은 (나의) 집안일에 대해 한번 정리해 보았다.
< 의 >
빨래의 분류는 일반 빨래, 아기빨래, 이불 빨래, 발수건과 걸레류 , 쿠션이나 인형류 이렇게 분류하여 돌린다. 물론 세탁기와 건조기가 알아서 일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약간의 귀찮은 과정이 필요하다.
지퍼가 있는 옷은 지퍼를 잠가 뒤집거나 빨래망에 넣는다. 빨래망에 넣을 때에는 대충 접거나 구기면 안 되고 앞방향으로 한번, 뒷방향으로 또 한 번, 이렇게 지그재그 모양이 되게끔 접는다. 이유는? 인스타에서 봤다. 이렇게 접어야 빨래에 세제가 뭉치지 않고 골고루 빨아진다 하더라. (인스타의 정보가 아주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 브래지어와 아끼는 옷도 빨래망 넣는 수고로움을 더한다.
건조기를 돌릴 때에는 우선 건조기 필터의 먼지를 제거한다. 그리고 빨랫감 뭉터기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섬세 의류를 발굴해내어 따로 빨래 건조대에 자연 건조 시킨다. 이외에도 디테일한 분류를 하면 좋겠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여기까지만 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이 합의는 철저히 나에게만 해당된다. 나의 남편은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무작위로 싹 다 넣고 빨아버린다. 그리하여 걸레와 속옷이 , 니트와 모난 지퍼가, 한데 어우러져 버무려진다. 하지만 별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에겐 용납할 수가 없는 행위. 이것을 두고 남편과 몇 번의 언쟁을 벌였었지만 남편은 "대충 해. 망가지면 그냥 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쇼핑을 할 시간도 사치인 '애엄마'이기에 혹시 모를 손상은 피하고 싶다. 결국 그냥 모든 빨래는 내가 돌리기로 했다.
< 식 >
요리에 소질과 흥미가 없는 나에게 요리는 정말 힘든 집안일이다.
요리의 시작은 계획이라는 정신노동부터 시작한다. 무엇을 해먹을지 미리 궁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여유롭게 궁리하며 온라인 사이트의 장바구니를 채워나가다 육퇴 후 자유시간이 순삭 될 수 있다. 그리고 결정한 메뉴를 실제 요리를 할 때까지 잊지 않아야 한다. 기껏 생각해 놓고 막상 요리할 때 새까맣게 잊은 채 다시 궁리하는 이중 노고가 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요리할 때에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력, 내가 지닌 음식과 필요한 음식에 대한 분석력,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여러 음식을 단시간에 만들 센스가 요구된다. 그리고 끈기 또한 필요하다. 음식을 식탁에 내어낼 마지막 순간까지 간을 보며 완성도를 높이려는 끈기 말이다.
음식을 먹는 가족 구성원이 까탈스러운 입맛과 냉철한 심사력을 지녔다면, 그에 굴하지 않을 멘탈 또한 지녀야 한다. 그러니까 요리는 정말 정신과 육체의 노동이 동시에 필요한 고난이도의 일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모든 것들 중 까탈스러운 가족 구성원만 지녔다.
평소 요리는 성인용(자극 버전)과 아이용(순한 버전) 두 가지를 한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급할 때 밀키트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냉동실용 음식도 만들어 쟁여놓는다. 거기에 냉동이 가능한 식재료를 썰거나 다져서 소분해 얼리는 일도 틈틈이 해야 한다. 한 번씩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오래되거나 안 먹을 것 같은 음식은 버려주고, 잊고 있던 식재료나 음식들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츰차츰 냉'창고'로 용도변경 되어간다.
그러니까 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사 먹을 수도 있다. 건강을 위해서 직접 만든 음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내 몸이 편해야 내 마음이 편하고, 그래야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직접 만들어야 내 할 도리를 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