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맨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존경하는 강석문 작가님의 작품 〈내 마음 속 오징어〉
서울 평창동 이정아갤러리에서 강 작가님의 개인전 '너를, 나를 응원한다'가
9월 7일∼10월 13일까지 열렸습니다. 작가님 개인전 끝나고, 어제 큰일들이 우장창창 벌어졌군요.
전시회에서 저를 가장 끌어당긴 작품이었어요.
한지 느낌도 좋고, 아이들이 다 즐겁게 춤을 추고 있어서 보는 눈이 신났습니다.^^
오늘 아이가 지 등짝만한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향해 뛰어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뭉클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천천히 자라면 좋겠다 싶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을 잘 만났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선생님의 아들은 3월 초에 군대를 갔고,
6학년을 자주 맡으시다 오랜만에 1학년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꿀이 뚝뚝 흘렀다.
선생님은 매주 짝뽑기를 해서 아이들의 짝을 자주 바꿔주신다.
아이들은 기대감을 갖고 월요일을 시작하고,
2학기가 되니 8시40분 넘으면 지각 벌청소를 새롭게 시행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밥먹고 현관문을 나서게 해주신다.
아이는 학교에서 교과목도 배우고, 교우관계도 배우고, 말하는 법도 배운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하는 것도 배우고
조금 늦으면 횡단보도 지나 뛰어야 하는 것도 터득한다.
나는 싸우는 법도 가르친다. 괴롭히지 말고,
괴롭힘 당할 때는 냉정하게 말한 후 또 그러면 손을 탁! 쳐내라고.
아직은 괴롭히는 게 뭔지 자세히 모르는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에게 말해준다.
상대방이 싫어하면 그게 괴롭히는 거라고.
친구가 싫다고 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하면 멈춰야 한다고.
아이는 여러 차례 그 의미를 확인한다. 괴롭힘과 노는 행동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아이.
모두에게, 모든 부모에게 아이는 그런 존재다.
구사하는 단어와 문장이 늘어가는 것도 사랑스럽고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무척이나 귀엽다.
아이가 태어날 때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바랐던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많은 욕심 부리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기를,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커갈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갑을 따져가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갑의 위치라고 느껴질 때 익명의 이름으로 또는 갑의 이름으로
비인간적인 짓을 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들이 가득한 사회이기를,
삶과 죽음이 마음먹는 한순간 찰나의 선택이고, 명예와 추락이 포장의 다른 이름이다.
어제, 조국 장관이 내려왔고,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
본질을 벗어난 진흙탕 싸움에서 지저분하게 대응하지 않고 만신창이가 된 그는
바보 노무현과 뭐가 다를 것인가.
파낼 게 없으면 가족을 파는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입시부정을 외치고 싶었다면 교육개혁을 함께 논해야 할 것이었고,
투자의혹을 말하고 싶었다면 관련법도 함께 따져야 할 것이었다.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가짜뉴스와 쓰레기뉴스가 섞여서 무얼 읽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정당의 논리는 국민을 위한 게 아니고, 대표는 뻔뻔해야 아랫사람도 지킬 수 있다.
이런 사회다. 악성으로 치달은 댓글문화는 창창한 젊은이 여럿을 가슴 아프게 떠나보냈고,
이제라도 자정의 목소리가 힘을 발휘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유명인의 인스타를 퍼다 나르며 아무나 기자가 되고
익명이면 아무나 아무 댓글이나 달고
그 아무나에 화를 내며 내가 아무나 냐며 뭇지마 폭행을 자행하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세상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걱정이 많은 가을의 한복판이다.
** 많이 오랜만에 돌아와 타닥타닥 글을 쓰니 왠지 마음이 좀 풀립니다.
스스로 한 약속을 가벼이 깨트렸기에 또 한번 반성하며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쓰겠다는 작지만 쉽지 않은 계획을 또 세우고 실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