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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말고
시장에 가는 이유

- 하정우가 걷는 이유랑 비슷해지고 있음

↑ 시장 글을 쓸거라 생각했으면 시장 사진을 좀 찍을 껄... 적당한 사진이 없어서 대충 골랐습니다.

작년 이맘때 찍은 사진 같습니다. 파주 북센 가는 길 억새밭 풍경.

봄에는 넓은 잔디밭, 가을엔 억새풀이 지천에 깔려 있어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걷는 시간이 꽤나 괜찮습니다.  



요즘 1주일에 한 번은 마트 말고 재래시장 다니기를 하고 있는데,

걷고 구경하고 물건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버스 노선이 갈 때와 올 때가 달라 불편해서 자주 못 다녔었다.

그동안 왜 걸어서 갈 생각을 안 했을까.


시작은 한 달 전, 아이 학교에서 화분 가져오라는 선생님 말씀 덕분이었다.

교실을 화사하게 만들어보자는 선생님 방침에 1학년 첫 학기, 봄에 화분을 보냈었다.

방학이 되니 집으로 돌려보내셨고, 2학기 개학 후 다시 가져오라는 거였는데,

방학 때 그만 식물을 죽이고 말았다.

카랑코에 곁가지가 많이 나와서 잘라서 수경으로 뿌리내리기를 하고

분을 여러 개에다 늘려줄 생각이었는데, 비실비실 다 죽고 말았다.


동네 엄마 둘이 시장엘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구나, 길치에 공간감각도 둔한 나는

그렇게 화원도 따라가고 장보러도 따라갔다.

그리고, 며칠 후 금요일, 학교 끝난 아이에게 "송화방신시장 갈래? 가래떡도 사고!" 했더니

아이가 좋다고 따라나섰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학교 앞 길을 건너 골목골목을 걷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이상하다! 저번엔 그냥 주택 사이로 쭉 가면 시장 옆가지가 나왔는데, 가도가도 주택만 보인다. ㅠ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댔고, 나는 난감했다.

알고 보니, 시장은 바로 코앞에 있었고, 오는 길에 보니 ㄷ 자로 돌아서 간 거였다.


중국산이긴 하지만 꼬불이 콩나물도 2000원이면 한가득 사오고,

금방 나온 따뜻한 가래떡도 사다가 꿀 찍어먹고,

과하지 않은 양념의 반찬도 3개 5000원에 업어오고,

시금치나 가지도 싱싱한 걸 싸게 가져오며 왠지 든든하다.


아이 구몬 선생님 오시는 화요일이나

(저녁 시간대라 출출한 선생님 드실 떡이나 식혜를 사온다) 

일주일의 일과가 마무리되는 느낌의 금요일에 아이 손잡고 한 번씩 갔다가

꽈배기나 가래떡 하나씩 물고 손잡고 돌아오는 길이 즐겁다.

얼마 전에는 다리 아프다는 아이랑 눈앞의 공원에 들어가 떡을 먹다가

동네 엄마를 만났다. 알고 보니 동네에세 유명한 쌈지공원이었다.

가래떡은 살 때 욕심껏 세 줄 또는 다섯 줄을 사는데

이걸 2등분이나 3등분을 해서 담으면 그 양이 제법 된다.

맛있게 먹고 남은 떡이 냉장고로 들어가는 순간, 밖으로 안 나올 확률이 95%다.

여러 차례 경험치를 반영하여 그날은

동네 엄마랑 옆의 엄마와 아이들에게 떡을 다 나눠주고 모두 맛있게 먹었다.

3천원으로 즐거움도 베풀고 오후시간의 허기까지 넉넉히 채웠다.


<걷는 사람, 하정우> 가 생각나서 책을 뒤적였더니

서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사는 도시를 내 발로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동네에 연결된 작은 골목들을 알아가는 게 나는 즐겁다." 

앗! 내가 시장 가는 느낌이랑 비슷하네.

(영화 찍을 때 강남에서 마포까지 왕복) 하루 3만 보,

가끔은 온종일 걷기 위해 떠난 하와이에서 친구들과 하루 10만 보를 걷는다는 그.

"만약 내 인생에 마지막 4박 6일이 주어진다면, 난 진심으로 무얼 하고 싶은가?"

하정우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다. 계속 걷겠다고.

나는? 나는 무얼 할까?  

하루는 시원한 맥주를 맛있게 먹고,

하루는 아들과 하루 종일 명랑하게 보내고,

하루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 공기샤워를 하며 산책하고,

하루는 그간 내가 써둔 노트와 일기장을 정리하고,

하루는 가장 아끼는 물건 하나를 품에 꼭 안을까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좋다. 계속 업데이트 해봐야겠다)


나는 얼마 전, 

하정우가 쓴다는 피트니스밴드 '핏빗'(검색해보니 너무 비쌌다)이 아닌

저렴한 샤오미 밴드를 샀다.

사실 만보기만 있으면 되지 싶어 어플을 깔았는데,

휴대폰을 잘 안 들고 다니니 걸음수 측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합니다> 저자들과 시작한 다이어트 톡방에서 주워들은 밴드 정보에 따르면,

피트니스밴드도 역시 샤오미가 가성비가 좋았다. 

검색해보니 샤오미4까지 나와 있어서 샤오미2는 많이 저렴했다.

시간, 걸음수, 심박수 딱 3가지 기능만 있어서 만보기로 쓰기에 딱!이었다.

더군다나 시간 보느라 휴대전화 꺼내기 일쑤였는데, 자연스레 디지털 디톡스도 할 수 있다!

미밴드 어플과 연동하면 수면습관도 분석해주는데,

예상대로 나의 수면 질은 매우 우수했다.

바깥 나들이를 짧게 하거나 집안에서만 왔다갔다 하는 날은 1천 보도 채우기 힘들다.

주말 오후 내내 테니스를 쳐야 겨우 1만 보가 넘는 걸 경험했다.

3만 보는 얼만큼이나 걸어야 하는 거리와 시간인가?

만 보까지는 아니어도 시장을 다녀오면 8천 보 정도는 거뜬히 채워진다.


하정우 책은 서너 달 전에 읽었던 건데

읽는 내내 과연 하정우가 썼을까, 고스트라이터가 붙었을까, 생각하느라

밑줄 그으면서도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일정 페이지를 지나니

'그래, 누가 썼으면 어때? 어차피 하정우의 생각이고 하정우의 삶을 읽고 있는 건데'

싶었다.

생각이 멋지고, 슬럼프 극복방법이 건전하고 (아, 설리도 이 방법을 알았으면 좋았을까...)

맛있게 먹기 위해 열심히 걷는 단순한 논리가 좋았다.


그래, 끝까지 못읽었던 책, 다시 읽으며 걷기 습관을 굳혀보기로, 오늘도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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