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만나는 인생 질문,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마흔이 되면 훅 들어오는 인생 질문을 만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변화할 것인가? 이대로 살아갈 것인가?
어떤 이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이 질문을 외면한 채 지나쳐버린다.
어떤 이는 이것을 붙잡고 깊은 사색과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는 지나치지 못했다. 나를 아주 불편하게 하는 이 질문을 붙잡고 늘어지기로 결심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평생을 죽는 날까지 답할 수 없을지 모르는 이 질문을 무슨 용기로 붙잡은 것인가?
주변 사람들이 말한다.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고.
남들에게 내적 갈등에 대해 내비치지 않으려 했지만 티가 나나보다.
밝고 명랑하고 대인관계 원만함.
초등학교 학생기록부에나 적혀 있을 법한 말들이
아직도 마흔의 나에게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나이는 먹었지만 페르소나는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글을 끄적였다. 꽤 많이.
아이패드 Pages 앱에 꽤 많은 글이 쌓였다. 다시 못 봐줄 정도의 글들이지만 그래도 소중하다.
그러다가 더 깊이 나를 알고 싶다는 욕망, 자기실현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에 나름 선별한 '좋은 책'을 펼쳤다.
독서를 하고 글을 써본다. 저 깊이 나의 내면에 들어가 휘젓고 다니는 그것들을 만났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그것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나인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고민한 수많은 모든 것들은 '존재'라는 단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삶의 그 자체다. '라는 말에 또 한 번 허탈함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은 지극히 나,
즉 '자기'에 관한 것이다.
평범하지만 스스로에게는 특별한 존재.
여기서 출발하고자 한다.
이 우주 속에서 나란 존재는 단 하나뿐이며
삶은 그저 '찰나'라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인다.
또 하나의 진실,
우리는 예외 없이 누구나 불안전하고 미숙한 인간이다.
이것을 머리와 가슴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과정,
그것을 삶의 목표로 여기게 되면
집착하지 않는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자만하지도 않게 된다. 겸손해진다.
그리고,
그저 묵묵하게 수행자처럼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몇 개의 문장들,
이 문장들을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받아들였다고 붙잡은 것이 해결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뭐든 출발이 중요하듯,
나는 한 발을 내디뎠다.
삶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에서
삶에 의미는 없고
그저 내가 부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글들은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내면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들을
그저 기록하는 것들이 될 것이다.
먼 훗날,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삶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던 그때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잠시 멈추고
용기 내어 그것을 붙잡아보기를 참 잘했다고.
그래서 내 삶이 변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