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앞둔 풍경 #1
여름 방학을 3일 앞두고, 우리 반 꼬마들이 3월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던 물총놀이를 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의 아이들은 때 되면 워터파크에 가고, 가족들과 여행을 가서 스노클링도 해보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최신식 물놀이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도시 아이들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물총놀이가 시시할 법도 한데, 올해 아이들은 유독 물총놀이를 기대했다.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5월에 이미 물총을 준비한 아이도 있었고, 물총놀이를 하는 날에 행여나 결석이라도 하게 될까 봐 매번 물총놀이를 하는 날짜를 확인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보다 자극적이고 신나는 경험들을 충분히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고작 물총놀이에 이렇게까지 강한 집념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몇몇 아이들에게는 직접 물어보기도 했고, 아이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엿들어도 봤다. 아이들이 물총놀이를 기대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였다.
1. 수업을 안 한다.
2. 장난감인 물총을 학교에 가져올 수 있다.
3.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다 같이 노는 날이다.
그중에서도 3번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우리 반이 모두 같이 노는 날. 마치 현장체험학습(소풍)처럼 우리 반의 특별한 날. 생각보다 아이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날'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이런 날들이 하루하루 모여서 추억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함께 놀이를 완성하기
모두가 고대하던 결전의 날을 앞두고 안타까운 상황이 생겼다. 가족 여행을 가게 된 아이, 부상으로 팔 깁스를 한 아이,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놀이에 참여할 수 없는 아이까지. 고작 물총놀이에 가족 여행을 미루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 아이의 불참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신나게 물총놀이를 하는 모습을 구령대에 앉아 마냥 구경만 해야 하는 아이들이 짠했다. 그래서 미션 물총놀이를 준비했다.
1. 인원수를 맞춰 아이들을 레드팀과 블루팀으로 나눈다.
2. 팀원들은 운동장 곳곳에 숨겨진 팀 쪽지를 찾아야 한다.
3. 레드팀과 블루팀은 물총을 이용해 상대팀에 대한 공격과 수비를 할 수 있다.
4. 팀 쪽지에 적힌 글자들을 조합하여 비밀 문장을 먼저 완성하는 팀이 승리한다.
무척 간단한 미션이지만 그래도 나름 팀전이라 아이들도 소소한 승부욕을 보이며 참여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구령대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도우미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우미 아이들은 물총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물총에 물을 채우는 동안, 운동장 곳곳에 비밀 쪽지를 숨기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다. 놀이가 진행되는 중에는 각 팀원들이 찾아온 비밀 쪽지 배열하기, 본인 팀 응원하기, 상대 팀 감시하기 등의 역할을 통해 놀이에 참여한다. 이렇게 놀이 진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들 없이 교사 혼자서 미션놀이를 진행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이 날 미션 놀이는 간발의 차이로 블루팀이 이겼다. 레드팀은 ♡를 찾지 못했다. 마지막 글자인 ♡를 찾지 못하면 너네들 모두 여름방학을 할 수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목소리 큰 여자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전하고, 발이 빠른 남자애는 온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며 마지막 미션을 친구들에게 알린다. 내가 자기들만큼이나 방학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다. 선생님이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떠는데, 그걸 또 받아주는 맘씨 좋은 어린이들. 다 같이 합심해서 마지막 쪽지를 찾았다. 기념사진을 찍고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을 지켜보다가 '저런 것도 놀이가 되는구나!', '물총으로 할 수 있는 놀이가 생각보다 많구나.'를 새삼 배웠다.
돌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꽃이랑 나무에 물도 주고, 누구 물총이 더 높이 나가나 하늘을 향해 쏘았다가 나란히 물벼락도 맞아보고, 물총으로 서로 신발도 씻겨주고, 땡볕에서 한창을 놀다가 그늘로 쉬러 온 친구에게는 아낌없는 물총 샤워 서비스를!
물총은 붓이 되었다가, 물뿌리개가 되었다가, 활이 되었다가, 샤워기가 된다.
모든 것이 놀이
아이들이 충분히 흠뻑 젖었을 때 놀이를 마치고 교실로 향했다.
콩콩 튀어 오르며 몸을 털고,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옷을 비틀어 짠다. 미역처럼 얼굴에 찰싹 붙은 머리카락을 베베 꼬아 물기를 짜내고 친구를 도와주기도 한다.
여학생들을 먼저 교실로 보냈다. 복도에서 교실 안이 보이지 않도록 이면지를 겹쳐 창문 곳곳을 가렸다. 교실은 간이 탈의실, 복도는 간이 대기실이 됐다. 보면 안 된다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 앙탈을 있는 힘껏 부리면서 왜 자꾸 교실문을 열어젖히는 건지. 복도에서 기다리는 남학생들은 어정쩡하게 눈을 가린 채 소리를 지르며 연신 꼼지락거린다.
들뜬 아이들. 놀이를 정리하는 시간마저 활기가 넘쳐흐른다. 수건을 돌돌 말아 양머리를 만들어 쓴 아이 주변으로는 기다란 줄이 생겼다. 양머리 수건을 쓴 아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 양머리를 한 친구들을 바라보며 서로 귀여워하는 귀여운 10살.
아이들은 물총놀이도 좋지만, 교실이 탈의실이 되는 것도 재밌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익숙함의 변주, 그 자체가 놀이가 된 하루.
한바탕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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