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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Jan 04. 2021

8살, 과자파티 그리고 어른은 거들뿐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다. 동글동글 좁은 턱과 젖살 통통 둥근 볼의 뺨에서 조금은 강해진 턱과 윤곽이 드러나는 광대뼈 등 제법 소년의 얼굴이 되었다. 들어 올려 안으면 내 허벅지까지 닿던 아들의 다리가 이제는 무릎 아래까지 자라났다. 둘 다 흔적이 역력하지만, 똥도 혼자서 닦고 샤워도 혼자서 한다. 벌써 두세 줄을 넘어가는 요즘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것도 놀랍다. 여러모로 초등학교 1학년은 그 전의 유아기와는 다르다. 확실히 아기 테를 벗었다. 만으로 6세, 우리나라 나이로 8세면 발달학 상 초등교육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때로 적절하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불행히도 아들은 코로나 사태로 초등학교 입학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등교도 띄엄띄엄하는 신입생 신세가 되었다. 가뜩이나 입학 전 늦가을에 이사를 와서 동네에 친구가 없었는데, 입학식만 간소하게 하고 등교를 하지 않으니 친구 없이 엄마랑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8세면 진정으로 친구와 놀 수 있는 때이다. 그전까지는 친구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따로 놀거나, 함께 놀더라도 각자의 말을 던지는 일방 놀이라면 이제는 서로 적절한 말대답을 하며 맥락이 있는 대화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단기간에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는 장기 국면으로 들어갔고, 입학 후 한 달여를 집에서만 보내다 봄이 무르익은 때에야 단축 수업으로 등교를 하게 됐다. 감염 우려로 인해 급식이 자유선택이라, 급식을 하지 않으면 11시 30분, 급식을 하면 12시에 하교를 하였는데, 나는 지극히 쫄보 인지라 급식을 시키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아들이 하교를 하며, 12시에 학교 옆 공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 친구들과 약속을 했다.”면서. 꽤나 새로운 모습이자 상황이었다. 마치 회사에서 보고 기한이 있는 업무를 하달받은 것 같다고나 할까? 지금까지는 아이의 놀이임에도 보호자에 의해서 약속이 정해지고 이행되었다면, 이제는 본인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 것이었다. 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초로 단독자로서 의사결정을 했고, 그 의사결정은 무려 상대방이 있는 쌍방 행위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에서 이루어진 첫 공식적인 횡보였다.

 12시에 학교 옆 넓은 공원에 가보니 정말로 반 친구들이 있었다. 남자아이들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공원이 아닌 놀이터에서 모인다고 했다. 발달 교과서에서 그랬다. 이 나이면 성별에 대한 구분이 또렷해져서 자신이 속한 성별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진다고. 정말 그랬다. 남자아이들끼리 모여 누구는 공을 차고, 누구는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나누며 땅을 팠다. 날이 갈수록 하교 후 공원 놀이는 암묵적인 계약이 되었고, 아들은 그 계약의 당사자로서 계약 이행의 즐거움을 만끽했으며, 졸지에 보호자들은 대략 2시간을 벤치에 앉아 대기했지만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 돌봄 이모님 등 다양하게 모인 보호자들이 아이의 학교 숙제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정보 교류의 장이었다.

 그렇게 곧 여름이 왔고 해가 길어졌다. 그리고 아들이 그랬다, “5시 30분에 공원에서 과자 파티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미 단독자로서의 공식적인 쌍방 행위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하며 집에 있던 큰 과자 한 봉과 파티인 만큼 다수의 인원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개별 포장된 젤리를 한 보따리 챙겨 나섰다. 나가보니 진짜로 아이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낮에 모이는 공차는 아이, 땅 파는 아이들이 그대로 모였다. 엄마들, 할머니들, 이모님도 그대로였다. 대개는 과자를 들고 왔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명목은 과자파티였지만, 우주에서 기운을 받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8살 아이들이 공터를 휘저으며 잡기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한바탕의 뜀박질이 끝나고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인다. 잡기 놀이는 아마도 과자파티의 리셉션이었나 보다. 한 보호자 분이 네모반듯한 직사각 봉투에서 자리를 꺼내시더니 촤악 펼치신다. 올록볼록 푹신한 발포 매트다. 아이들이 주섬주섬 과자를 가지고 착석을 하는데, 7~8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 앉고도 남을 대형 매트였다. 보호자들이 나서 과자를 중앙으로 두고 아이들을 빙 둘러 앉힌다. 누구는 대형 물티슈를 꺼내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깨끗하게 닦아주고, 누구는 과자봉투를 열어 아이들 모두의 손에 닿을 만하게 자리를 잡아주고, 누구는 과자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 저 멀리서 바라보는 모르는 아이까지 모아 와 앉힌다. 이러는 사이 아이들의 땀 냄새를 따라 덩달아 떼 지어 몰려드는 초여름의 독 오른 숲 모기들. 발포 매트의 주인장님이 발 빠르게 어딘가를 다녀오시더니 모기향을 아이들 주변 여러 곳에 피우신다. 그리고 또 커다란 봉투에서 아이들 먹기 좋은 사이즈의 작은 생수병들을 일일이 나눠 주신다. 그렇게 진짜로 아이들의 과자파티가 성대하게 실행되었다.

 뒤편에 모인 보호자들의 소견은 이러했다. 아이들이 낮에 놀다가 헤어질 때면 저녁에 혹은 정확히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진단다. 그만큼 놀이가 재미있었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각자가 선언한 약속 시간에 못 나오는 때도 있지만 대개는 나오는데, 그 약속이 실제로 성사되는 날이 얼마 없었다는 것이다. 요맘때의 아이들은 비록 똥은 닦고 샤워도 할 수 있고, 문제만도 두세 줄이 되는 수학 문제를 풀 수는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는 상대방의 사정에 대한 통으로 된 이해 부족과 정해진 시간에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향해 다른 부수적인 일이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유사시에 연락할 휴대폰과 같은 연락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에 그 약속이 지켜진 적은 별로 없다는 공통의 소견.

 과자를 먹으며 제법 맥락 있는 대화를 주고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내 마음이 몽글몽글 부풀어 오를까? 어쩌면 그 초여름 밤의 과자파티는, 8살 그러나 만으로는 대략 7년을 산, 이제 막 스스로의 공식적 횡보를 결정하고 이행하기 시작한 어린 사람의, 다음을 기약하고 싶을 만큼의 당시의 즐거움에서 비롯한 다소 환상적으로 성립된 약속과 그 모호한 약속을 확정해주고 싶었던 어른들의 마음의 합산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합산의 일부에 나도 기여했다는 보람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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