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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여인 Aug 06. 2019

한여름의 죄책감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이번주에 할머니 병원 내려가"

"왜? 많이 편찮으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한번 찾아가"


작년 이 맘때쯤 동생에게 전화 한통이 왔다. 동생은 할머니 병원에 한번 찾아가라고 간략하게 말한 후 끊었다.


왜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이상하고 묘한 기분. 괜히 기분이 신경쓰이는, 무언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이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갈 때. 그때가 딱 그랬다.


나는 그런 마음을 지긋이 묵살했었다. 그 때 아주 일이 많았다. 마치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심정으로, 닥치는대로 브레이크도 없이 일을 했을 무렵이었다.


거창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아주 초라한 핑계를 방패삼아 그 주 주말에 내려가지 않았다. 다음주에 얼추 일이 끝날 것 같으니 그때 내려가야지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결국 나는 할머니가 계셨던 병원이 아니라, 합천의 한 장례식장으로 갔다.


삼일동안 나는 그리 울지는 않았다. 동생의 전화에도 내려가지 않은 내가 감히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도 가소롭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나란 인간'의 인격을 스스로 되짚는 느낌이라 양심에 찔려 더욱 담담한척 앉아있었다. 아빠는 많이 울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보다 더 슬퍼보였다. 고모들도 많이 울었다.


3일째 되는 날 할머니집 뒷산으로 할머니를 묻었다. 삽에 조금씩 흙을 퍼서 온 식구가 할머니의 관에 흙을 던졌다. 그리고 홀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많이 울기 시작했다.


서울에 온 뒤 비가 며칠동안 내렸다. 갓 쌓아 올린 할머니의 묘가 걱정이 되었지만 비가 멈추고 그 걱정은 무정하게도 비가 마르는 속도에 맞추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할머니가 돌아가신 여름이 왔다.

요 며칠은 비가 자꾸만 내린다. 아마도 나는 한여름 비가 올 때마다 나는 그 때 왜 병원에 가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죄책감과 추억에 뒤엉켜 살 것 같다.


오늘은 할머니랑 한여름에 감나무 밑 평상에 누워 매미 소리도 듣고 할머니가 내어나오던 찬들을 주워먹던 것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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