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오늘은 웹드라마 추가 촬영이 있는 날이다. 몇 시에 끝날지도 모르고 며칠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한국이었다면 분명 짜증이 치밀어 올랐을 법한데, 여기선 왜인지 너그러워진다.
촬영은 수영장이 딸린 저택에서 진행됐다. 아름다운 집이었다. 커다란 수영장과 잔디로 된 축구장이 있고 부엌으로 쓰는 별채가 한 대 더 있는 흰 벽돌집. 대기 겸 준비 장소로 쓰는 별채 앞에는 라벤더가 가득하고 그 옆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부엌에는 커다란 모카포트 두대가 동시에 끓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탈리안 교수님이 진지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아메리카노는 커피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물론이지." 하며 다들 웃음을 지었다.
이탈리안들과 있다 보니 커피가 늘었다. 아무리 맛있어도 혼자서는 기껏해야 하루 한 잔 마시던 게 촬영장만 오면 세 잔, 네 잔씩 마신다. 커피 때문일까, 사람들 때문일까. 요 며칠 마음이 붕 떠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다. 이탈리안들의 하이텐션은 커피에서 오는가 보다.
그래서인지 나는 웃음이 늘었다. 작은 일에도 활짝 웃곤 한다. 촬영장에서 누가 말만 걸어도, 먹을 것 하나만 건네도. 촬영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가슴이 두근대는 게 커피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설레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별채 앞 텃밭에는 쥬키니 호박이 자라고 있었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도 텃밭이 있었다. 낭만적인 흰 벽돌 집과는 거리가 먼 연탄을 떼던 낡은 단층집. 우리 집 텃밭에는 늙은 호박과 고추, 대파를 심었다. 나는 호박잎을 쪄서 그 위에 보리밥을 얹고 쌈장을 한 젓가락 올려서 한 입에 넣는 상상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호박꽃도 먹지?" 상상 속 호박잎쌈을 우물대며 에도에게 물었다.
"응. 왜? 한국에선 안 먹어?"
"우린 꽃은 안 먹고 잎을 먹어."
물음표 가득한 표정을 짓는 에도의 얼굴에 나는 소리내 웃었다. 보리밥 몇 알이 입 밖으로 튄다. 얘가 이런 표정을 또 언제 지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