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파란 하늘이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평선 위 하얀 구름은 뛰어가면 잡힐 듯이 가깝게 느껴졌다. 건너편 길에서 빨간 목줄을 한 검정색 코카스파니엘이 주인과 함께 산책 중이다. 이 마을 강아지들은 대부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로 산책을 한다. 저 둘은 하루에 두 번, 아침 여덟 시와 오후 네 시에 같은 길목에서 만나곤 한다. 나는 산책하는 강아지와 주인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지루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끈질기게 강아지를 기다려주는 주인은 그의 강아지 만큼이나 사랑스럽다. 1시 57분. 약속장소까지 가려면 5분정도 더 걸리지만 발걸음은 느긋하다. 이 나라에서 2분 지각은 늦는 축에도 끼지 않는다.
'영화찍을래?'
며칠 전 아드리아나가 뜬금없이 물었다.
'응?'
지인이 영상을 찍는데 아시안 여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를 추천했단다. 하루이틀이면 찍을 수 있는 작은 역할이고 이 동네에서 아시안 여자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라 추천했는데 해볼 생각있냐고.
'하지 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난 백수니까. 뭐 엄청난 연기력이 필요한 것도 아닐테니. 약속 장소는 피아짜에 위치한 성당이었다. 피아짜를 수도없이 왔었지만 이 건물이 성당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성당에 다다르자 스테파노가 손을 흔들었다. 이 스테파노는 이전에 소개했던 스테파노와는 다른 인물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스테파노, 알레싼드로, 안드레아 -. 카톨릭이라 그렇다나.
이 곳에서 동양인으로 살면서 갖는 단 하나의 장점은 상대가 날 먼저 알아본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약속 상대가 누구인지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How are you?'
전에 아드리아나와 함께 만난 적 있던 스테파노는 인사로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물었다. 성당 안 쪽에 자리잡은 들어가자 회의실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스테파노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고 다 함께 인사를 나눴다. 프로덕션 상견례. 이탈리아에선 뭐라고 일컫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라는 다르지만 분위기는 익숙하다.
'안녕'
내 또래 남자애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이름은 에도아르도. 배우였다.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알고 보니 나와 한 살 차이였다. 몇 마디 이야기 나누나 싶더니 이내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한다며 수줍고 멋쩍게 웃었다. 정직한 웃음이었다. 먼저 다가와준 게 고마워 괜찮다며 웃었다.
미팅에 들어가기 전 스테파노는 팀원들에게 시놉시스를 나눠줬다. 시놉시스를 보니 영화가 아니라 웹드라마였다. 아드리아나 입장에선 물론 그거나 그거나 였겠지, 생각하며 혼자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