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 더 덕 Jun 19. 2020

이탈리아에서 웹드라마 찍기

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웹 드라마 참여 삼일째. 팀원은 총 스무 명 정도로 배우는 나를 포함해서 6명이다. 오늘은 대본 리딩 및 의상, 메이크업을 위한 테이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드리아나는 하루이틀이 소요되는 간단한 역할이라고 소개했지만 미팅을 거듭하며 깨달은 것은 그렇게 간단한 역할이 아니라는 것과(나름 주요인물), 절대 하루 이틀 안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촬영준비만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30장 규모의 대본이 죄다 이태리어로 쓰여 있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영어로 번역해 줄 팀원은 당연히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미팅 내내 짬을 내서 대본을 영어로 번역했다. 첫 다섯 장의 번역이 끝날 쯤 에도가 와서 힐끔거렸다.


"구글로 번역하고 있는 거야? 봐줄까?"


에도는 의자를 당겨 내 옆자리로 가져와 앉았다. 분명 저번에 영어를 못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메모해 둔 단어들을 확인하며 하나씩 체크해줬다. 어떤 건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틀린 것에는 설명을 달아주며.


머리가 금색이면 속눈썹도 금색이구나. 내리깐 눈을 보며 멍하니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에도가 갑자기 복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맞아. 나도 이 단어가 뭔지 궁금 했어. 번역기에 돌려도 안나오더라고."

"음.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에도는 골똘히 생각하다 벌떡 일어나서 문 뒤로 몸을 숨겼다.


"잘 봐."


그러고는 얼굴만 '빼꼼', 하고 내밀었다.


"이거야!"


웃음이 터졌다. 그의 완벽한 설명에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빼꼼. 빼꼼이었다. 처음이었다. 이탈리아에 와서 이렇게 웃은 건. 영어로 빼꼼을 뭐라고 하지?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한참을 생각했지만 떠오르질 않았다.


에도는 나와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미팅이 끝나고 내 볼에 입맞춤을 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목에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이 방향을 못 잡고 엉거주춤 했다. 그러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볼 인사할 수 있는 이탈리안 지인이 3명으로 늘었다. 아드리아나, 스테파노, 에도아르도. 에도와 웃고 떠들어서 그런지 볼 인사를 멍청하게 해서 그런지 팀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친근해진 것을 느꼈다. 대부분 영어를 전혀 못해서 대화는 아직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도 마찬가지인 걸.


집에 가는 길이 전과 달리 가볍게 느껴졌다. 이게 뭐라고. 볼인사가 뭐라고. 웃음이 뭐라고. 날씨가 좋다. 발걸음이 솜사탕 같다.

메이크업 테스트 중
제일 좋아하는 조합
작가의 이전글 이탈리아 영화 출연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