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탈 듯이 더운 날이다. 눈부신 여름. 이 곳의 여름은 정말 눈부시고 뜨겁다. 태양신이 사랑한 나라 이탈리아.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빨갛고노란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 신기한 건 한국과 달리 고온저습이라 그늘에만 있으면 더위가 말끔하게 가신다.
리딩을 위해 성당이 있는 피아짜로 느적느적 걸어갔다. 큰 철문을 열고 성당에 들어가면 디귿자 모양의 건물 옆에 작은 정원이 있다. 성당은작고 조용하다. 간간히 수녀님을 본적은 있지만 신부님은 본 적이 없다. 예배실에 들어가 본 적 도 없다. 리딩과 회의를 위해 다목적실을 사용했을 뿐 그 외 다른 공간은 둘러 본 적이 없다. 성당 소유의 별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둘러봐도 예배를 지낼 만 한 공간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정원 벤치에 앉았다.
철문 너머로 에도아르도가 들어왔다. 이탈리아에서는 가까운 사이끼리는 이름의 앞부분만 따서 부른다. 알레싼드로는 알레, 아드리아나는 아드리, 스테파노는 스테. 에도아르도는 팀원들 사이에서 에도로 불린다.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 차림에 검정색 백팩. 로마에 사는 에도는 한 시간 반 가량 기차를 타고 와서 일정을 소화했다. 반짝이는 머리칼과 새하얀 이. 에도는 내 옆 벤치에 가방을 놓고 앉았다.
"나 할말 있는데"
내가 인사도 없이 뜬금없이 말을 걸자 에도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앉은 벤치로 자리를 옮겨 내 코 앞에 앉았다. 이탈리안들은 눈을 피하는법이 없다. 해리포터에서 인물을 설명할 때 빠지지않는 것이 바로 눈이다. 눈동자 색. ’짙은 갈색, 에멜라드 빛 푸른색, 호박색을 띄는 노란색-.’ 외국인을 일년에 한 두 번 볼까 말까 했던 열 살의 나는 그 눈들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에도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본 그 순간, 나는 비로소j.k.롤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회색. 에도의 눈동자는 푸른빛이 도는 회색이었다.
"Dimmi(듣고있어)"
하고 에도가 말했다.
냉정과 열정사이(Red)에서는 인물을 묘사할 때 얼굴, 표정을 주로 사용한다. ‘꿰뚫어 보는 듯한 눈, 어른같은 표정, 눈이 부신 듯 찡그린 얼굴 -.’ 눈동자 색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역시 동양이라 그런걸까. 사람을 묘사하는 건 너무 어렵다. 만나보지 않는 한 전해지지 않는 인물의 특징. 사진으로도 전할 수 없다. 에도가 얼마나 따듯한 얼굴을 가졌는지 알려주고 싶지만 나는 할 수 가 없다.
황금색 머리칼에 푸른빛이 도는 회색 눈,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던 아이. 반팔 아래 드러나는 팔 털조차 황금색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그 팔 털을 보고 황금색의 솜사탕 같다고 생각했다. 황금색의 솜사탕같은 아이.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이탈리안처럼 에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Bisogna solo credere hai sogni - e trovare la porta per realizzarli - "
전 날 에도가 직접 녹음해준 내 대사였다. 집에 돌아가 에도의 목소리를 들으며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에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더니 활짝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에도는 기특하다며 나를 꼭 안았다. 숨을 아주 잠깐 참았다 뱉었다. 볕이 뜨겁다 못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