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 더 덕 Jun 26. 2020

이탈리안과 닮아가기

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한 무리의 이탈리안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봤다. 회의실에는 이탈리아말만이 방 안 가득 울린다. 동양인은 물론이고 외국인은 나 혼자다.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 나는 이탈리아어는 물론이고 연기도 형편없다는 것을 미리 말했다.


'전혀 문제 없어. 하루 이틀 정도만 촬영하면 되는 간단한 역이야.'


하지만 촬영은 점점 길어지고 내가 나오는 장면은 추가되고 스테파노는 나에게 이런저런 과제를 내주기 시작했다.


'혹시 모놀로그 한 개 직접 만들어줄 수 있어?'

'혹시 노래 부를 줄 알아?'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스테파노는 내가 준비해간 모든 것에 칭찬을 쏟아 부었다. 이탈리아인의 칭찬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있다. 나이 든 남자의 칭찬은 더 물을 것도 없다. 70대 배우인 알베르토는 매 번 따듯한 눈으로 온갖 미사여구가 담긴 칭찬을 쏟아낸다. 하루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표현을 쓰길래 에도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네 피부가 무슨 사포로 다듬은 도자기 같대.'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나는 모든 팀원들과 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같이 지내다보니 점점 팀원들을 닮아가고 있다. 인사할 때 볼에 입술을 대는 것도, 말끝마다 감탄사를 붙이는 것도, 손이 날아갈 듯 한 제스처도.


'그거알아? 스테파노가 처음에 나 캐스팅할 때, 이틀 필요하다고 했었어.'


촬영이 열흘을 넘어갈 쯤 팀원인 줄리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에도가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거들었다.


'난 5일.'


우리 셋은 일제히 스테파노를 쳐다봤다. 내리 쬐는 햇빛에 그의 정수리가 반짝인다. 뜬금없이 그가 대머리 독수리와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때마침 제작자와 편집이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테파노가 며칠이라고 하든 적어도 세 번은 곱해야 할 걸.'


줄리아의 이야기에 우리는 숨죽여 킬킬댔다.


촬영중
작가의 이전글 푸른빛이 도는 회색 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