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왜 기부는 언제나 끝나는가.
기부는 착한 행위다. 하지만 그 착한 행위는 유한하다.
우리는 기부를 할 때, 일정 금액을 내고, 그것으로 끝난다.
돈을 더 내지 않는 것으로, 나의 통제를 행사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기부자가 더 많은 통제권을 가질 수 있다면?
기부가 단지 착함의 증명이 아니라, 지속적인 참여의 방식이 된다면?
그래서 나는 구조를 바꾸는 상상을 해본다.
기부를 적금처럼 만드는 것이다.
기부자가 매달 일정 금액을 ‘적금’처럼 불입하고,
그 이자 수익만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다.
기부자는 원금을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이자 수익은 타인을 위해 쓰인다.
이 구조는 단순한 선행을 넘어서,
‘참여의 지속성’과 ‘의미의 누적’을 가능하게 만든다.
기부자가 적금을 해지하면, 그 순간 사회에 대한 기여도 종료된다.
즉, 기부자는 돈을 빼는 순간 자신의 도덕적, 사회적 지분도 잃는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비난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손해다.
‘내가 이자 수익을 넘기며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을 끊는 대가로, 내 손에는 현금이 남지만
마음엔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남는다.
게다가 이 방식은 기부자에게도 심리적 보상을 준다.
나는 거액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사회에 ‘참여 중’이다.
적은 금액이어도, ‘나는 여전히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한다.
이 모델은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하다.
단기성 기부가 아니라, 장기성 구조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공공기관 역시 이 시스템에 보조금을 붙여줄 수 있다.
장기 기부 유지자에게는 세금 감면, 혹은 기부 이자에 대한 매칭 서포트를 제공하는 식으로.
기부는 왜 적금이 될 수 없는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선행’을 ‘완료형’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선행을 ‘지속형 동사’로 만들고 싶다.
멈추지 않고, 조금씩 계속되는 것.
소리 없이 자라나는 신뢰의 이자.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기부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