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두렵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 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둑처럼, 한 수를 두는 순간 돌은 그 자리에 고정된다.
그 결정은 영원히 판 위에 남아, 이후의 모든 수를 제약한다.
연애는 다르다.
체스에 가깝다.
상황이 달라지면 말을 다시 조정할 수 있고, 실수를 만회할 수도 있다.
체스는 전략의 게임이고, 바둑은 운명적 게임이다.
연애에는 ‘다음 수’가 있고, 결혼에는 ‘되돌릴 수 없음’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애를 즐기지만 결혼을 주저한다.
연애는 선택의 반복이고, 결혼은 선택의 고정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오늘의 나”로부터 시작하지만, 결혼은 “영원의 나”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나 인간에게 과도한 철학적 요구를 한다 —
‘변하지 않겠다’는 약속.
하지만 인간은 변하는 존재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뀌고, 감정의 온도가 변한다.
그런데도 결혼은 바둑처럼 돌을 한 번 놓으면 다시 들어올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 규칙이 인간의 자유를 가두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어떤 깊은 의미가 태어난다.
왜냐면 무르지 못하기 때문에 진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앞에서야 인간은 비로소 ‘의지’라는 것을 배운다.
연애가 감정의 영역이라면, 결혼은 의지의 영역이다.
연애가 두 사람의 심리적 게임이라면, 결혼은 두 세계의 통합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바둑은 단 한 수로도 판 전체의 균형을 바꾼다.
결혼도 그렇다.
한 마디, 한 행동, 한 결정이 두 사람의 모든 역사를 바꿔버린다.
그래서 결혼은 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존재론적인 게임이다.
연애는 상황을 조정하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라면,
결혼은 상황을 초월하는 결단을 배우는 과정이다.
하나는 ‘움직임의 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정착의 철학’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 두렵다.
내가 두려운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려놓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다.
한 번의 수로, 내 인생 전체의 모양이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