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역설

by 신성규

진리는 증명되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뉴턴은 인간을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진리를 볼 수 있는 자, 다른 하나는 그저 믿을 수밖에 없는 자.

그에게 진리는 계시가 아니었고, 의견도 아니었다. 그것은 수학의 기호 안에서 완결된 세계였고,

이미 증명된 구조물에 불완전한 말이 더해질수록 오히려 진리는 흐려진다고 믿었다.

그에게 설명은 퇴보였고, 논쟁은 낭비였다.


그는 완벽한 수학적 진술 하나가 천 마디 언변보다 강력하다고 보았으며,

누군가 그 완결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잘못된 건 자신이 아니라 상대의 인식 능력이라고 여겼다.

그의 고립은 교만이 아니라, 진리를 보는 자의 필연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뉴턴 이후, 철학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러셀은 그 수학적 진리를 끝까지 밀어붙였고, 괴델은 그 끝에 증명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었으며,

비트겐슈타인은 그 모든 논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세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들 모두, 뉴턴의 ‘완결된 진리’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진리의 틈에서 나오는 불협화음을 듣게 된다.

진리를 보는 눈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눈은 점점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괴델은 수학의 무한한 체계 안에서 증명할 수 없지만 참인 명제가 존재함을 밝혔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철학의 종말을 고했다.

러셀은 수학의 논리적 토대를 찾다가, 결국 확실성의 불가능성을 깨닫고 철학적 회의 속에 잠긴다.


그들은 모두 진리를 원했지만,

그 진리의 끝은 침묵, 공허, 때론 광기였다.


이것이 바로 고독한 천재들의 역설이다.

진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은, 결국 그 진리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쓰러진다.

논리는 완벽했지만, 세계는 여전히 불완전했다.

언어는 정밀했지만, 고통은 설명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알게 된다.

진리라는 말은, 때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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