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일기: 안전함은 때로 가장 교묘한 형태의 포기다

by 신성규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 하려 하면 꼭 말린다.

그건 위험하다고,

망할 거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나는 늘 묻는다.

그들이 말하는 ‘위험’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에게 위험이란,

예측할 수 없는 삶,

자유로운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날들.

그리고 실패할 가능성이다.

그게 그들에게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직장 생활 해. 안정적이야.”

그 말 속에는

고정된 수입과 제도권 안의 신분이 담겨 있다.

그것은 마치 안전망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것을 ‘느린 자살’이라고 부르고 싶다.


숨 막히는 사무실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삶을 천천히 소멸시키는 과정이다.

매달 통장에 숫자가 들어오는 걸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측정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게 정말 안전한 걸까?


내게 직장은 오히려 천천히 죽어가는 감옥처럼 보인다.

심장은 뛰지만, 마음은 죽어가고,

몸은 움직이지만, 생각은 갇혀 있다.

무언가를 만들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시스템 안에서

“관리된 생존”을 반복하는 것이다.

내 생각엔 리스크를 지지 않는 것보다 더한 리스크는 없다.


이 느린 자살은 급격한 죽음보다 더 끔찍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면의 불꽃을 하나씩 꺼뜨리고,

정신과 감정을 서서히 말라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려 하지만,

사실 그 위험은 살아있음을 뜻한다.

그 위험 속에 우리는 나아가고, 실패하고,

배우고, 성장한다.


하지만 직장은

그 위험을 제거한다.

그 대신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천천히 죽는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왜 사람들은 도전하는 사람을 위험하다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느린 죽음을 ‘현명함’이라고 포장하는가.


어쩌면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척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말한다.

빠르게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가 내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안에 살아있음이 깃든다고.


안전함이라는 껍데기 속에 감춰진

느린 자살보다,

나는 뜨겁고 불확실한 삶을 선택하고 싶다.


안전함은 때로

가장 교묘한 형태의 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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