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Only Lovers Left Alive의 철학

by 신성규

짐 자무쉬의 세계는 언제나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천천히 어루만진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특히 그 가운데서도

시간에 지친 자들의 멜랑콜리한 초상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수백 년을 살아온 뱀파이어 ‘아담’과 ‘이브’.

하지만 이들은 다른 뱀파이어처럼 인간을 사냥하거나 공포를 주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역사를 회상하고, 도시를 관찰한다.

무엇보다, 서로를 사랑하며 존재를 지탱한다.


아담은 현대 문명을 “좀비들의 세계”라 부르며 회의하고 절망한다.

그는 인간의 창조성은 사라졌고, 시간은 진부하며, 세계는 오염되었다고 느낀다.

그런 그를 붙잡아두는 유일한 것은 이브이다.


결국, 시간을 견디는 것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관계의 의미다.

이브는 말한다.

“당신은 아직도 아름다워.”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인간의 피를 갈망하지만, 더 이상 살육을 통해 얻지 않는다.

그들은 병원에서 밀수한 혈액을 마시며 절제된 삶을 살고, 인간을 경멸하지만 인간의 문화에는 집착한다.

아담은 실험악기를 수집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만든다.

이브는 단테, 셰익스피어, 바이런 등 모든 고전 문학을 기억한다.

그들의 벗 크리스토퍼 말로(실존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역사 속 위대한 예술가들이 실제로는 뱀파이어였다는 설정을 통해,

예술은 인간보다 오래 사는 존재라는 철학을 펼친다.


즉, 뱀파이어는 예술의 불멸성에 대한 메타포다.

예술가는 죽지 않고, 시간 너머로 생존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삶의 비극을 더 오래 겪는 형벌을 받는다.


이브는 탕제르(Tangier), 아담은 디트로이트(Detroit)에 산다.

이 장소들은 중요하다.

탕제르는 과거 예술과 환각, 시인의 도시.

디트로이트는 한때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자, 이제는 폐허의 도시다.


짐 자무쉬는 문명의 쇠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과 감각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좀비처럼 반복되고 소비되는 삶을 산다.

그러나 뱀파이어들은 느리고, 고요하고, 깊은 감각을 간직한 채 ‘살아 있는 자’로 남는다.


이 때 제목이 역설적으로 빛난다.


Only lovers left alive

사랑하는 자들만이 살아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존재의 지속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가 생존을 결정한다.


아담은 죽음을 꿈꾸고 있었다.

그의 절망은 시대의 타락, 인간의 무감각, 아름다움의 상실에서 온다.

하지만 이브는 그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끝내 그에게 말없이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존재로 남는다.


둘은 피를 나누고 음악을 나누며 서로를 깨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이란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끝없이 마주하고 기다리는 침묵의 의지이다.


영화의 마지막, 둘은 인간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폭력이 아니라,

마지막 감각을 지키기 위한 저항처럼 느껴진다.


예술, 감정,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한

존재의 마지막 선택.


이 영화가 전하는 철학은 단순하다. 그러나 깊다.

기술도, 문명도, 권력도 사라진다.

그러나 감정과 사랑, 그리고 예술은 남는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음’이다.


“Only Lovers Left Alive”는 말한다.


피를 마신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


이브와 아담은 인간의 시대를 초월한 존재이지만,

그들은 결국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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