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들의 고독에 대한 고찰

by 신성규

예쁘다는 것은 단순한 형용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환경이고, 무의식 속 질서이며,

타인의 눈을 통해 구성되는 일종의 ‘사회적 위치’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때로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조립된 ‘형태’로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축복일까, 혹은 투명한 감옥일까?


세상은 말한다.

“예쁜데 왜 혼자야?”

“예쁜데 왜 그렇게 방어적이야?”

“예쁜데 왜 친구가 없어?”


그러나 이 질문들은 너무 단순하다.

그들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단지 받는 것,

무조건적인 사회적 이득으로만 오해한다.

하지만 진실은 종종 정반대다.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관찰과 평가의 대상이 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망실되기 쉽다.


타인의 호의는 때로 조건부다.

그 호의가 외모에 기반했음을 느끼는 순간,

그 사람은 인간관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나라는 존재”보다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앞설 때,

존재는 거짓된 자아로 대체된다.

이 거짓 자아는 관계 속에서 사랑받지만,

사랑받는 것은 내가 아니라

꾸며진 모습의 나라는 점에서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은 종종 사람을 피한다.


특히 온실 같은 환경 속에서 성장한 경우,

즉 여중, 여고, 여대 등으로 이어지는 폐쇄적 여성 집단에서

외모는 숨기거나 감당해야 할 ‘위험 요소’가 된다.

질투, 견제, 은근한 소외는

공기처럼 흐르고,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감지한다.

그 안에서 배운 것은 한 가지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타인의 시선에 익숙해진 뇌는

과잉 각성 상태가 된다.

신경과학적으로 이는 편도체 과활성 상태로,

조금만 비난이나 배신의 낌새가 있어도

전체 관계를 중단해버린다.

‘관계에 대한 내성’이 약한 사람은,

결국 모든 관계를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유년 시절의 친구만이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그때는 외모가 모든 걸 결정하지 않았고,

조건 없이 놀고, 웃고, 울던 시절이었기에

그 관계만큼은 ‘진짜 나’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 시절의 시간만이

아직 오염되지 않은 신뢰의 세계로 남아 있다.


그러니, 너무 많은 아름다움은

결국 거리두기를 낳는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거리,

진짜 나를 숨기기 위한 거리,

그리고 나를 소비하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기 위한 거리.


그 거리 속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왜 혼자야?”

그러나 그 질문의 안쪽에는,

“나는 아직 진짜 나를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하지 못한 고백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이 고립은 되돌릴 수 있을까?


가능하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재훈련할 수 있는 능력이며,

‘나’로 존재하는 경험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이다.


그 회복은 첫째,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성하는 공간을 갖는 것이다.

예술, 철학, 글쓰기, 또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는 활동.


둘째,

외모와 무관한 정체성으로 인정받는 경험이 필요하다.

나의 재능, 성실함, 관찰력, 감수성 같은

비외모적 자질로 인정받는 순간들이 신뢰 재건의 토양이 된다.


셋째,

한 번에 깊은 관계를 만들기보다,

‘얕지만 진실한 관계’를 여러 번 반복하며

관계에 대한 내적 면역을 천천히 복구해야 한다.

깊은 신뢰는 하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넷째,

몸을 통한 감각 회복이 중요하다.

명상, 요가, 무용은

타인의 눈으로부터 해방되어

내가 나로 존재하는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칭찬이 아니라,

더 적은 판단과, 더 많은 관찰 없는 관계다.

그를 소비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그 존재 그대로 둬주는

한 사람의 시선.


그것이 진짜 연결의 시작이다.


당신이 만약 그 침묵 속의 사람이라면,

그건 당신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당신은 단지 너무 많이 보았고,

너무 일찍 실망했고,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신뢰는 다시 배울 수 있고,

관계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빛나는 사람은 때로 가장 고요한 곳에서 피어난다.

당신이 그 고요에서 나올 준비가 될 때,

당신을 보려는 눈도 함께 깨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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