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아버지가 하던 걸 아들이 물려받는 게 뭐가 문제냐.”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한 가문의 기술, 철학, 삶의 기반이 대물림되는 것은 전통적 가문경제의 자연스러운 형태다.
그러나 우리는 간과한다.
그 기업이 상장 기업, 즉 공공의 자본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면,
그 순간부터는 개인 가문이 세습할 수 없는 ‘공적 구조’가 된다는 사실을.
상장 기업은 단순한 사기업이 아니다.
그 기업의 주인은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이다.
주식이 거래되는 순간부터, 그 기업은 더 이상 “우리 집 가게”가 아니다.
투명한 경영, 책임 있는 이사회, 성과에 기반한 CEO 선임,
이 모든 것은 공공 자산을 관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개념을 자주 잊는다.
“OO그룹 회장 아들이니까 당연히 승계해야지.”
“그 집안이 일궈온 기업인데 뭐가 문제야?”
이 말들은 사기업적 사고방식으로 상장 기업을 오해한 결과다.
상장사의 CEO는 채용 대상이다.
이사회와 주주총회는 그를 선출하고 해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의 한국 재벌 구조에서는,
총수 일가가 CEO를 사실상 세습하며,
그 결정은 통제받지 않고, 견제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공기업 사장을 대물림하는 것과 같다.
말이 되지 않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기업을 아직도 “누가 만들었는지”에 따라 주인의식이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주식회사는 원래부터 공적 자본이 들어와 주인이 계속 바뀌는 구조다.
창업자는 기업의 설립자일 수 있어도,
영구한 소유자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주식회사와 가문을 혼동한다.
창업자의 손자까지 경영 능력 검증 없이 자동으로 물려받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처럼 받아들인다.
이건 주식회사에 대한 개념적 착각이자,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무지다.
세습은 사적 공간에서는 가능하지만,
공공의 구조에서는 허용되어선 안 된다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잇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이 공공 자산을 관리하는 자리라면,
그 세습은 부당하고, 위험하며, 불공정하다.
상장 기업의 CEO는 공적 자리에 앉는 사람이다.
우리는 ‘가문의 명예’라는 말로,
공공 자본 위에 사적 권력을 쌓고 있는 건 아닌가?
이중 잣대는 결국,
우리 모두의 퇴보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