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한국 재벌의 유사성

by 신성규

나는 때때로 김정은을 한국의 재벌 총수와 겹쳐 본다.

그는 한 국가의 절대 권력자이자, 동시에 자신의 가문을 중심으로 구성된 하나의 시스템을 운영한다. 놀랍게도 이 구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상품 뒤에 숨어 있는 재벌 기업의 오너 경영 구조와 닮아 있다.


물론 그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재벌은 상품을 팔고, 김정은은 국가를 통제한다.

재벌은 시장 경제를 움직이고, 김정은은 계획경제 속 권력을 쥔다.

하지만 이 모든 차이를 넘어, 나는 하나의 공통 구조를 본다.

바로, ‘공적 체계의 사유화’다.


김정은은 국가를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북한의 경제, 교육, 군대, 외교, 문화까지도 그의 통제 아래 있다.

그는 마치 한 기업의 오너 CEO처럼, 모든 결정권을 독점한다.


놀랍지 않게도, 한국의 재벌 대기업 중 일부는

그에 못지않은 통제 권력을 행사한다.

사외이사마저도 임명 가능한 인사권,

총수 일가를 위한 내부거래 구조,

비공개 계열사를 통한 부의 이전.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가문이 다수의 노동자와 주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권을 물려받았다.

그 정당성은 ‘혈통’과 ‘역사’라는 신화에서 기인한다.


한국의 재벌도 그렇다.

총수 자녀가 실적과 무관하게 후계자로 낙점되고,

외부 전문가보다 일가족이 경영 전면에 나선다.

회사를 키운 창업주의 명성은 가문의 상징이 되고,

그 후계는 국가 경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포장된다.


이렇게 공공의 자산이, 자연스럽게 개인의 권력으로 전이된다.


이 구조는 오직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만 작동한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재벌도 한국이라는 법·문화·정치 구조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구조가 허용되지 않는다.

CEO의 인사권은 이사회에 의해 제약된다.

내부자 거래는 즉시 법적 제재를 받는다.

회계와 지배구조는 철저히 공시되고 감시된다.

가족 경영은 원칙적으로 배제되며, 전문 경영인 체제가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김정은이 외국에 나가 CEO를 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 재벌 총수도 그 구조 그대로는 외국에서 경영할 수 없다.

그 구조는 투명성과 책임이라는 ‘시장 민주주의’의 원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김정은과 재벌 총수는 모두 공공의 틀을 사적으로 점유하고 지배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정상’처럼 보이지만,

외부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구조가 정상처럼 굳어진 상태다.


이것은 단지 북한의 문제나 재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구조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사유화, 통제의 부재, 책임의 실종은

언제든지 독재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북한은 독점적 기업 모델의 극단적 시뮬레이션이며,

사유화된 권력이 감시와 윤리를 제거하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예시다.


그 질문은 단지 북한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재벌 구조, 세습 권력, 감시받지 않는 기업 시스템 모두를 향해 있다.


김정은은 독재자이자 CEO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세습된 권력의 비상장 독점기업이다.

그리고 그 구조의 축소판은 우리가 매일 보는 주식시장 한복판에도 존재한다.


김정은의 북한이 국가를 사유화한 체제라면,

한국의 일부 기업도 공적 자본을 사유화한 체제다.

다만 하나는 정치적 언어로 불리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언어로 포장될 뿐이다.


우리는 자주 묻는다.

왜 한국은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같은 창업자가 잘 안 나올까?


그러나 정작 우리는 자수성가형 창업자보다는,

가문의 명맥을 이은 ‘젊은 회장님’을 동경하고 찬양한다.

신문은 그들의 골프 실력, 브랜드 감각, 유학 배경을 미화하며

그들의 경영 능력은 “DNA에 새겨졌다”고 말한다.


그 순간, 우리는 김정은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피의 세습’과 ‘자산의 세습’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김정은에게 느끼는 거부감은,

실은 그 안에 감춰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위선’에 대한 반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투명하지 않고, 민주적이지 않으며, 혈연과 권한으로만 유지되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언론사는 대기업 광고에 입을 닫고,

관료는 총수 일가에 눈치를 보고,

소비자는 재벌의 사과를 브랜드처럼 받아들인다.


김정은은 그 모든 모순을 응축한 비틀린 거울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세습은 인간의 욕망이고, 사회의 선택이며, 시스템의 반영이다.

김정은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우리는 국내에서 세습을 합리화하고 찬양하는 구조 또한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김정은을 욕하면서도,

김정은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시스템을 매일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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