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기분 2부

by 소은성

멍하니 있다가 또 고독에 당할 수는 없지. 추석을 앞두고 스파 외에도 준비 목록을 만들었다. 첫번째는 추석 음식 장만하기. 한달 전부터 목록을 점검하는 중이다. 매일 밤 된장이나 피순대를 만드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볼 정도로 한식에 (약간 두려울 정도의) 열의가 있는 파트너와는 이럴 때에 쿵-짝이 꽤 맞는다. 그는 한술 더 떴다. “배추김치를 담가야 해. 명절 음식은 느끼하니까 김치가 필수야.”


그는 서둘러 아마존에서 독일의 전통 음식 ‘슈크르트’ (양배추 발효절임. 여러가지 소시지에 곁들여 먹는다)를 담그는 항아리를 주문했다. 언젠가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언젠가 적합한 접착제를 찾으면, 이가 나마간 채 1년째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에스프레소 잔을 수선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그가, 10분 만에 아마존 쇼핑을 끝냈다.


우리는 음식 이야기는 한국어로 대화한다. 그가 서둘러 메뉴를 선점했다.

“만두 만들어야지!”

“농. 잡채 만들 거야. 잡채와 만두는 맛이 겹쳐. 잡채 있다? 그러면 만두 없다!”

“맛이 겹쳐, 가 뭐야? 나는 만두 만든다!”

“만두는 설에 먹는 거야. 추석엔 송편이지.”

“내가 바보로 보여? 우리는 송편과 만두를 모두 만든다. 왜냐하면? 맛이 있으니까!”

그는 추석마다 내 가족이 싸준 쑥송편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 먹어치우곤 했었다. 추석과 송편의 관계를 모를 리가 없었다. 서울 망원동 신선왕만두 단골이라, 주인장에게 늘 고기 왕만두 하나를 덤으로 받곤 했던 그의 주장에 압도되어 어느새 나는 만두피 만드는 법을 받아적고 있었다. 인생은 역시 기세다. 더 먹고 싶은 사람이 이긴다. 더 많이 먹고 싶은 사람이 주방을 장악한다.


유럽 소도시에 산다는 것은 대도시=한인마트 방문이란 것이다. 때마다 철두철미한 계획이 필요하다. 방심을 하였다가는 ‘고구마전분으로 당면 만들 수 있나요’를 검색하는 수가 있다. 해외 거주자가 한식을 만드는 데에는 철저한 준비성이 필요하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한 대접의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장면을 보았는가. 옥수수 씨앗을 심어 수확한다. (반년 소요) 옥수수면을 뽑아 끓는 물에 삶는다. 반년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짜파게티 분말 소스를 뜯는 김씨의 표정! 나는 그 장면에서 이제는 웃을 수가 없다. 내 뺨에는 페이소스의 쓰고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2 이민에 대해 별별 것을 다 검색하면서도, 명절음식을 그리워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의 엄마 집에 살 때에 나는 명절마다 히스테릭으로 달아올랐다. 한국의 평범한 장녀라면 구구한 역사를 읊지 않아도 단숨에 이해하겠으나, 보편과 개별은 다르므로 굳이 써 본다. 나는 종종 ‘밥의 저주’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밤마다 앓으면서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늘 체기였다. 매끼 압력밥솥에 새 밥을 지어야 하고, 국이나 찌개도 매번 달라야 하는 집에서 나는 자랐다. 할머니가 노인 몸에 좋은 닭발을 고으라고 명했을 때, 엄마의 징그럽고 무서워 등을 움츠린 채 산더미같은 걸 다 발라냈다. 명절 음식은 그런 기억을 폭발시킨다. 우리집 가부장제 기둥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없어도 엄마는 오랜 습관대로 5인이 며칠 동안 계속 먹고도 남을 음식을 한다. 우리집 식구는 셋 뿐이다. 부엌에 딸린 방에 풍기는 기름 냄새, 간장 냄새. 나는 사방에 오렌지향 룸스프레이를 뿌린다.


“이미 죽은 주인 섬기는 노예같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나는 속으로 끔찍하게 못된 소리를 한다. 방 밖으로 나갈 때 나는 미소를 준비한다. 차례 음식을 먹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든다. 그러기를 그녀가 바라기 때문에, 바라는 걸 내준다.


우리의 바램은 언제나 어긋났다. 한번은 그녀에게 카페나 갤러리처럼 젊은이들이 다니는 곳들을 구경시켜 주고 싶어 홍대로 불렀다. 홍대전철역 출구 앞에 선 엄마는 기진맥진이었다. 이마트 노란 쇼핑백 가득 반찬통을 담아와 건네며 엄마는 말한다. “혼자 사는 딸 반찬도 안 해주면 냉정한 엄마라고 남들이 흉 봐.” 나는 우리 둘의 관계와는 관련이 없는 어떤 유령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수런수런 흉을 보는 상상을 한다.


3 1년이 지났고, 프랑스에 살게 된 나는 버전2의 인간이 되어 엄마처럼 군다. 우울이 찾아와 산책조차 할 수가 없던 날에 잡채를 무쳤다. 색색의 야채를 썰면서 조금씩 회복됐다. 스스로에게 놀라서 ‘인생에서 ‘절대로' 란 없구나' 중얼거렸다. 나는 엄마처럼 군다. 나처럼 우울한 친구의 집 문에 잡채 봉지를 걸어두고 왔다. 나는 엄마처럼 군다. 먹을 것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준다.


프랑스로 오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엄마와 글쓰기 수업을 했다. 나 없이 홀로 노후를 지낼 엄마의 마음이 염려됐고 단단한 마음을 길러주고 싶었다. ‘길러주고 싶었다' 라고 쓴다. 성인이 된 내가 이제 점점 아이가 되는 엄마를 키운다.


‘음식을 오감으로 묘사하기’ 수업에서 엄마는 “선생님! 오분만 시간 더 주세요! 더 쓰고 싶어요!” 를 외치고는 했다. 야채를 칼로 썰 때의 사각사각한 촉감과 야채즙이 풍기는 상큼함, 색색깔의 아름다움, 기름에 야채를 볶을 때의 '꼬소한' 향기에 대해 쓸 때 엄마는 글쓰기를 황홀해했다. “요리할 때 나는 스트레스가 쫙쫙 풀린다. ‘너무’란 말을 열댓 번 쓰고 싶다. 선생님에게 혼나려나? 요리는 너무 재밌다. 그런데 청소는 하기 싫다. 아무튼 잡채는 내가 만들어도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 우리 아버지도 우리 언니도 다 요리를 잘했다. 그런데 다들 고생만 직싸게 하고 몸만 망가졌다. 아무튼 나는 이번 생에 살 빼기는 글렀다. 내 손맛 때문에.”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내가 착각한 게 있다. 나는 계몽한 인간이며 그래서 엄마 세대를 구원할 의무가 있다고. 계몽하는 인간은 계몽되는 인간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 무지한 존재, 구해줘야 할 존재로 보기 쉽다. 이론을 몰라도 엄마는 몸으로 주장했다. “아니, 나는 그냥 잡채 무치고 전 부치는 게 너무 재밌다니까!” “아니오. 다른 세상을 알면 그건 그냥 의무였단 걸 알게 될 거예요!” 이민 오느라 시간이 없어 이 말을 외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스럽다.





소은성 <친구들에게>는 한국을 떠나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에 사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메일로 보내드리는 에세이 메일링입니다. 새로운 시즌 구독은 작가소개에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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