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기분 1부

by 소은성

1 눈치없는 이야기를 해 볼까 보다. 매번의 명절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지난 추석은 더 그러했다. 생일 선물로 받은 스파 이용권을 추석 전날 저녁에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2020년 5월 남프랑스의 소도시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 전에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살았는데 집 근처 ‘미래사랑 사우나’를 열렬히 섬겼다. 냉혹한 남한의 겨울.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긴 추위와 겨루기 위한 무기로써 사우나 쿠폰 열 장을 사는 것은 매년 12월의 의례였다. 목욕탕이라는 단어와 같은 음절로 시작하는 목요일에 때비누와 때수건을 챙겨 집을 나서던 길의 홀가분함이라니.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90분은 마음보기 명상이나 다름없었다. 세계와 나 사이를 가르는 묵직한 여탕 유리문. 그 문을 여는 순간, 훅 끼치는 한방 냄새에 다음과 같은 잡념이 일소됐다. “작가님, 원고는…?” 와 같은 카카오톡 메세지가 쌓여갈 때의 부채감, 가족과의 크고 작은 갈등으로 생긴 찝찝한 기분, 막연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등.


목욕탕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드는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는 한국에 대한 향수병인 듯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미래사랑 사우나 쿠폰을 다섯 장이나 남기고 이민을 왔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아니다. 한국을 구성하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짚어 말하자. 나는 한국의 목욕탕을 사랑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자. 플라스틱 병에 든 새까맣고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쪼로록 빨아마시며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쑥탕을 온마음 다해 사랑한다고 정확히 말하자.


나의 연인 B는 이 작은 도시에서 일본식 욕조가 있는 스파를 찾아내 내 생일선물로 삼았다. 우리는 한국 여자가 네 명 있는 작은 도시에서 산다. 다운타운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꽤 있는데 그들은 장바구니를 든 나를 볼 때 마스크 밖으로 흘러넘칠 정도의 미소를 보낸다.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나는 일식집 입구의 고양이 인형처럼 까딱 인사를 하며 준비된 미소로 답한다.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나 조금 쑥스럽다.


“스파 방문을 위한 예약을 위해 방문을 해야 해.”

무슨 말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파트너를 따라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은데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것이 귀찮을 때가 종종 있다. 그 룰을 만들지 않았고 개정에 참여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된 후로 나는 이 말을 좋아하게 됐다. “오케!” 간단하게 오케. 뇌를 쓰지 않고 오케. 오케 오케 오케에 리듬이 붙어서는 오케 해야 하지 않아야 할 것에 오케를 던져 만나지 말아야 할 인간(사람이 아니라 ‘인간'이라 쓰는 것이 네이티브 한국인의 곤조다)도 만났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해서 내내 뒤척인 밤이 여럿 있었으나, 오케 덕분에 해버린 일도 만난 친구도 많았다. 오케의 호쾌함이 ‘쭈그리 이방인' 기분을 발로 차 줄 때가 있어서 오케를 버릴 생각은 당분간 없다.


아무튼


예약을 위해 방문한 스파는 일본적이지도 태국적이지도 않았다. 프랑스의 아시안 문화는 대개 그렇다. 차이니즈 뷔페에 놓인 쌀밥에 대충 뭔가를 얹은 것은 모두 스시라 불리고 베트남 튀김만두인 넴의 봉투에는 족두리에 연지곤지 찍은 한국 새색시가 그려져 있다. 죄다 혼종이다.


이민생활에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고독이 찾아오는 시기였다. 슬픈 날에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그런데 기쁜 날에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이 사무쳤다. 생일이나 오래 정성을 들인 일이 성취를 이뤘을 때처럼 친구들의 축하를 받을 날에 혼자 있는 건 물을 뺀 목욕탕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춥고 딱딱하고 심심했다.


곧 있을 추석의 쓸쓸함을 염려해 일찌감치 대비를 했다. “무조건 9월 29일로 예약해 주세요. 빈 시간 아무 때나 좋아요. 꼭 29일에 스파 해야 되는 저의 사정이 있어요.”


작년 여름, 나 자신과 싸우듯이 완성한 책이 출간된 날에는 특별히 더 고독했다.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욕조 바다에 앉아버렸다. 겁도 없이 내면을 많이 드러낸 글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오해당했을 때의 기분이 떠올라서였을까. 본래 출간 직전과 직후의 작가는 신생아처럼 연약하다.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소중한 늦둥이 아들을 해병대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 비슷한 것이 됐다. 샤워기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영화적 연출이라고 치부했는데, 그날은 현실이었다.


한가지의 감정이 더 있었으니, 축하의 소리가 부재한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이었다. 책을 채 읽지도 않은 친구들이 “노벨상 감이다! 2권은 언제 나오냐!”며 나대신 온갖 허세를 부려줘야 했다. 한데 모여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서 마시고 숙취로 멍청해져야 했다. 마음을 쏟아부은 일을 마칠 때마다 이성과 지성을 놓는 파티가 필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 결혼기념일이나 아이의 생일 등에도 여자들에게 이러한 파티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사견이다. 깔끔하게 축하하기에 우리들의 하루하루는 꽤 고단하니까.


(2부에서 계속)





소은성 <친구들에게>는 한국을 떠나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에 사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메일로 보내드리는 에세이 메일링입니다. 새로운 시즌 구독은 작가소개에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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