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을짓다 Apr 27. 2023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To. 조리원에서 돌아온 후, 엉망이 된 삶에 속상한 당신에게

오늘의 당신은 어떤가요? 달큰한 우유냄새를 폴폴 풍기며 하루 온종일 으앵~으앵~ 울면서 당신을 찾는 꼬물거리는 아가를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아가~’ 하며 아기를 다정하게 바라보았을까요?


저는요, 아이를 낳기 전부터 무척 아이들을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좋아 교사생활을 했었고, 어릴 적부터 엄마와 엄마 친구들이 모이면 누가 시키기 않아도 알아서 동생들을 돌보곤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아이가 태어나면 하루종일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올 거라고 굳게 믿었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상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다르더군요. 아기는 글자 그대로 하루종일 울며 저를 찾았어요. 잠시도 제게 쉬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조리원에서부터 그 기미가 보이긴 했어요. SNS를 통해 출산 후기와 조리원 후기를 읽어보면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했는데, 막상 조리원에 있을 때도 저는 정말 정신없이 바빴거든요.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어요. 조리원이 천국이라는 말은 이 정도 생활만 가능해도 천국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는 걸요. 그러나 저는 그 숨은 뜻을 파악하지 못했어요. 조리원부터 젖몸살로 고생하며 몇 번이고 눈물을 펑펑 쏟았지요. 아기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야 조리원이 천국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당신이 모습도 제 모습과 다르지 않겠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은 어려웠어요. 지금까지 마주한 세상 모든 문제들은 대부분 제가 노력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아기의 울음소리만은 예외였어요. 출산으로 온몸이 성치 않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도대체 왜 우는 건지 알 수 없어 쩔쩔거리며 아기를 달래고 재우고 먹이던 그 순간들이 지나고 잠시 고요한 시간이 생기면 자꾸만 눈물이 났어요.


출산 전에는 매일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당연했어요. 아침이면 오늘의 할 일을 To-do 리스트에 적어두고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며 하루 끝을 맞이하던 저였어요. 하루를 떠올려보며 내가 선택한 일들로 하루를 채워 살아 낸 덕분에 오늘도 즐겁게, 나답게 열심히 살았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잠들던 일은 이제 사치가 되었어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내 몸이 아픈 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심지어 출산 후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아이의 황달로 모유수유를 잠시 쉬며 분유를 먹이던 시기에 제대로 유축을 해주지 못해 유선염이 왔어요.


코로나가 막 퍼지던 시기라 열이 나면 진료보기도 쉽지 않던 때였어요. 몸은 너무 아픈데 고열이 나니 갈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일로도 저는 이미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다 썼는데, 수유를 하거나 유축을 하는 일은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열이 나고 오한으로 몸이 덜덜 떨리는데, 그 와중에도 아이를 케어해야 하고 유축은 또 유축대로 해줘야 하니 몸이 버텨나지 못하는 게 당연했어요. 그리고 마음도요. 무언가 한 구석이 툭 끊어진 것 같았어요.


‘이런 식으로 평생 아기에게 묶여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순간 들기도 했지만 절망적이고 답답한 기분이 더 먼저 들었어요. 평생을 재밌는 일을 쫓아오며 ‘나답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 다움’은 커녕 그냥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거든요.


내 삶의 자유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한 번 그런 식으로 뻗어나간 생각은 좀처럼 다시 긍정적으로 방향을 바꾸기 쉽지 않으니까요.


산후 우울증을 겪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는 ‘나’를 나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나답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은 제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요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상투적인 그 말이 실은 무척이나 중요한 진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당장 내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없다는 거,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적어도 알게는 된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산후우울증의 시기에 바닥으로 떨어진 마음을 추스르면서 저는 제대로 ‘나를 위한 일’들을 고민하기 시작했거든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오늘 저와 당신의 육아는 조금 더 순탄하기를,

오늘 저와 당신,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럼 우리,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안녕!


ps.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말이에요. 이런 제 이야기에 공감하고 저를 응원해 준다면 저는 무척 힘이 날 거예요. 간단하게 저를 응원할 수 있도록 이 글의 가장 아래는 ‘라이킷’이라는 버튼이 있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당신을 위해 ‘구독하기’라는 버튼도 있더라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ㅎㅎㅎ)


거기에 더해  혹시라도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오늘 당신을 위해 해 본 일이 있나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좋아요! 그런 일이 있다면 우리 서로 알려주기로 해요! 당신의 작은 일탈이 제 행복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오늘 정말 오랜만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자마자 침대 속으로 들어가 깊은 낮잠을 잤답니다. 좀처럼 낮잠을 자는 일이 없는 제게는 정말 새로운 일이었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니 정말 행복해지더라고요!

작가의 이전글 엄마에게도 숨구멍이 필요하니까요_Re;star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