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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Sep 13. 2019

관음하는 고양이와의 동거

고양이 일기 #3

#3


    혼자 산지 제법 되었다. 오랜 독신 생활로 인해 집안에 혼자 있을 때의 내 차림새와 행동거지는 차마 문명인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인 면이 많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조용히 나를 관음하고 있는 달리를 마주하는 순간에는...



달리에게...


    아이고 달리야! 나는 네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볼 때마다, 그때 내가 하고 있던 행동에 대해 당위성을 설명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단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너의 궁금해하는 그 지극히 귀여운 표정과 다소곳이 모은 앞발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에 변명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아. 왜 주기적으로 청소기를 돌리는지, 왜 아침마다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뜨거운 물줄기 속에서 망부석마냥 멍하니 꿋꿋하게 서있는지, 왜 혼자 음정도 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지, 왜 가끔 책상에 앉아 이상한 소리가 나는 동영상을 혼자 보고 있는지. 어쩜 너는 내가 뭔가를 하기만 하면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중생아...


    그런 행동은 대개 내가 인간이라서 하는 행동이지만, 내가 정작 껄끄러운 건 내가 나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들이란다. 그건 어떻게 당위성을 설명할 수 없어. 그러니까, 코를 후비다가 나를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물끄러미 쳐다보는 너를 마주했을 때는 뭘 그렇게 쳐다보냐고, 인간이 코딱지 파는 것 처음 보냐고, 너도 손가락이 없어서 못 팔 뿐이지 파고 싶은 거 내가 다 안다고 일갈할 수가 있지만,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와 짐볼에 분노의 주먹질을 날리다가 손목을 접질려버려 부여잡고는 소리를 지르고 있을 즈음 네가 날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본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단다. 어... 좀 모자라 보이긴 하지? 내가 왜 이러고 있냐면... 흠...


    너는 알고 있을까? 사람도 아닌 너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나의 모든 것을 보고 관찰하고 있는 너 때문에 나의 혼자 있는 시간이 방해된다고 생각하여 가끔은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 앉아 음악이나 듣다가 느지막이 퇴근하는 날도 있다는 사실을. 아니 내가 내 돈 내고 사는 집인데 왜 너 때문에! 그러니 그렇게 궁금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고 아까 하던 꼬리랑 싸우기 놀이나 계속하도록 해. 어차피 너는 우리말을 못하니까 설명해 주지도 않을 거고, 게다가 나도 네 모든 행동을 너의 행동이 아닌 고양이의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단다.

관음 중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해 버린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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