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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Aug 23. 2019

공든 탑

에세이 #1


    내가 겪은 대인관계의 성숙은 대부분 단념으로써 이루어졌다. 모든 일이 내 기대와 상식에 부합할 것이라는 생각, 모든 사람의 행동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일 것이라는 생각, 모든 일과 행동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이유가 밝혀져서 내가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 모두 나의 안일한 희망사항이었을 뿐이고, 결국엔 포기해야만 하는 생각들이었다. 이 일련의 포기를 ‘성숙’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해야 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뭐 어떠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골머리 앓으면서 ‘어쩜 나에게 이럴 수 있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하는 답이 없는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간단히 단념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는 넘어가는 것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 길이며 괴로움에 자멸하지 않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 ‘성숙’이라고 표현하는 데에 부담이 없겠다.


    관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관계를 끊어내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끊어내는 것이나 끊김 당하는 것이나 고통스럽긴 매한가지겠다만, 끊어진다는 사실의 괴로움과는 별개로 그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하기에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상처가 있다지만, 내가 상처를 내버리고 말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리도 무서운 것인지 어떻게 요리조리 잘 피해서 상처가 안나는 결으로 칼질을 조곤조곤해갈까 노심초사하다 결국에는 전 방위로 칼집을 내서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그런 결론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 어쩌지 못하고 결국엔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개중에는 방아쇠를 채 당겨내지 못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렵다는 이유가 그 행위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정말로 공들여서 탑을 쌓았으면서, 왜 스스로 무너뜨리지도 못하고 그냥 두고 떠나가는지. 그 공들여 지어진 탑은 폐허가 되어 꿋꿋이 그곳에 서있어 새로운 탑이 들어서지도 못하고 서서히 풍화되어 어쩌면 운이 나빠 그 땅까지 오염시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관계의 끝에는 무엇이 됐든 자기만의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법인데, 그 선택마저 제한당한 채 영문을 모르고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왕복하며 무너지지 못하고 서서히 풍화되어 가는 탑이 되는 기분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나도 한때는 공들여 지어진 탑이었는데.


    이러나저러나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 폭풍같이 분노하던 예전 시절에 비해 조금 덜 살아있는 사람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만, 이제는 지속적으로 나를 갉아먹어도 건강할 만큼 정신이 단단하지 않으므로 적당히 단념하고 내가 이해하거나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분노건 슬픔이건 간에 흘려보내버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만가지 이별 음악을 듣던 영화를 보던 음주가무를 하던 밤새서 게임을 하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식을 치러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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