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알게 된 이상은 무조건 보이게 되니, 보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뇌는 쉽사리 망각해 주지 않아 계속 보이게 되는 것이 요즘의 피곤한 삶의 주범이다.
나는 '좋은 것만 보면서 살아도 시간은 모자라다'는 삶의 방향을 고수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불행함을 안겨줄 만한 것들은 알게 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일부 오만한 사람들이 건방지게도 내가 모르는 것들을 본인들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 자꾸 나에게 새로운(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들이 보일만 한 사실을 주입하게 되는 날들이 가끔씩 있다. 내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진실들을 마치 뭐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목에 빳빳이 힘을 주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에 그런 날 내 머릿속은 온갖 안 좋은 감정들로 가득 찬다.
억지로 불러일으켜져 쉬이 잠잠해지지도 않는 열등감과 무기력한 마음가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집에 들어가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광교의 3년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과 내 3년 근로소득, 신장매매계약서도 울고 갈 만큼 많은 서명을 요구했던 내 전세대출 계약서와 동기 A의 증여받은 아파트, 새롭게 알게 된 '북창동식'의 의미 등을 생각하며 피곤함과 무기력함에 집 문을 열게 되는데...
그래, 달리는 오만하다. 건방진 달리는 문이 열리면 마중 나와 지나가는 내 다리를 걸려고 잠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이내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고 하품을 큼지막하게 하고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가 똬리를 튼다. 비키라는 말에 대꾸는커녕 소리 나는 방향을 쳐다보지도 않는 우리 사랑스러운 달리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내 손을 지 장난감인 양 쳐내고 물고 해서 기필코 자기 자리를 사수해낸다. 피곤함에 소파에 누워있는 나에게로 다가온 달리는 나를 밟고 지나간다. 별 목적도 없으면서 왜 밟고 지나가지? 건방지게 진짜..
비켜라 이 건방진 놈아
아, 건방진 고양이가 하루의 피로를 사르륵 날려버렸다. 달리가 가진 온화한 오만함은 삐뚤빼뚤 못난 마음에 불쑥 스스로에게 인생의 화풀이를 하며 내면을 갉아먹고 있는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정화, 치유까지 해주니 참 고마운 오만함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래, 건방지더라도 이렇게 온화하게 건방져야지. 덕분에 한참 피곤한 현대인의 삶에서도 에너지를 충전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