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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아니고 기린 Jul 30. 2019

연극, 프라이드(2019)

변화를 위한 변화, 거기서 오는 프라이드

글을 쓰기에 앞서 고백하건대, 이 작품을 벌써 서른 번 가까이 봤다. 한국 초연 때부터 매 시즌 챙겨봤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새삼 많이도 봤고 긴 시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 동안 이 이야기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잠 못 드는 밤을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냥 기쁘지 않다. 나는 언제나,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 작품이 더 이상 무대 위에 올라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고 있으니까.


*


“날 불러줄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닿으면서 시작되는 변화. 그게 사는 이유가 아닐까.”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꼽으라면 나는 늘 저 대사를 고른다. 개인적으로 이 대사 한 마디가 내 삶을 지탱해 준 소중한 목소리였다는 것도 있지만, 연극 <프라이드>를 말할 수 있는 수많은 키워드가 나아가는 방향은 변화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개인의 신념과 정체성, 더 나아가서 그렇게 서로가 닿은 모든 이들의 프라이드는 나와 우리를, 세상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이번 시즌이 좋았던 건, 바로 그 '변화'에 있었다.


좋은 작품이 재공연 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아주 사소한 차이라도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닿느냐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 시즌 <프라이드>는 조금 더 솔직하게, 직접적인 지점들을 콕 집어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함과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준다. 무언가를 구차하게 나열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야 하는 순간에 더욱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 그런 프라이드. 변화는 대개 그렇게 시작된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해 그 작은 조각 하나가 관객에게 닿으면 더 큰 하나의 메시지가 되는 법이다.


설령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터무니없는 환상이라 할지라도, 무대 위에 오르는 공연과 그 안을 채우는 작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는 분명히 무언가를 움직이게 만든다. 막연하다는 생각에 피해왔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무언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그렇다. 병원에 함께 가자고 했던 한 마디가 그때도 이 축제에 함께 오자는 말로 바뀐 것뿐인데, 극장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내내 따뜻한 위로로 남았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세상의 수많은 필립과 올리버, 실비아가 그려볼 수 있는 축제와 어떤 역사의 새로운 시작점에 닿는 위로. 기나 긴 여정의 어디쯤에서 만나 내밀어 준 손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


<프라이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의 끝은 아무래도, 앞서 말했듯 더 이상 이 이야기가 굳이 누군가의 잠 못 드는 밤을 위로하고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되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덮고 있는 이불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을 버티며 살고 있고, 세상에는 수많은 필립과 올리버, 그리고 실비아가 있다.


그러니, 아직은 이 여정을 응원하고 기도하고 싶다.

서로가 서로의 실비아가 되어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누군가의 이야기, 역사가 그 자체로 당당히 축제의 은유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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